멀리 다녀온 길

구름의 고향 파미르에서 꿈을 마주하다-5.고원에서의 이별

나무 향기 2022. 9. 2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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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그가 파미르의 관문으로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라면, 무르갑은 파미르의 한가운데에서 오가는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서로의 가진 것을 교환하는 교역의 중심으로 많은 이야기를 지닌 곳이다.
지정학적 위치로도 타지키스탄 령 파미르 고원의 거의 동쪽 끝에 위치해서 동쪽으로는 신장 위구르 지역을 통해 중국으로 통하고 북으로는 키르키즈스탄, 남쪽으로는 파키스탄과 인도와 연결이 되는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무르갑에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컨테이너 건물들로 이루어진 시장이 많은 외지인의 방문으로 분주했던 곳이다.

타지키스탄 국경의 거의 동쪽 끝에 있는 무르갑. 파미르 고원을 드나드는 통로의 중심지이다.

 
우리 일행의 이번 파미르 고원에서의 여정도 이곳 무르갑에서 마무리할 예정이어서 나름 의미가 있는 곳이기도 한데, 부룬쿨을 출발하기도 전에 벌써 일행중 일부가 고산 증세로 꽤 힘들어 보인다.
부룬쿨에서 무르갑까지는 대략 120km 정도의 거리.
고산 증세는 가볍게 넘기다간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기에 고산 증세를 보이는 일행들의 컨디션에 따라, 여차하면 차량 한 대는 곧바로 호로그로 먼저 내려가야하는 상황이다.

무르갑으로 출발하기 전 부룬쿨에서.

 
야실쿨에서 마을로 돌아왔더니 마을의 꼬마 아이들이 시끌벅적하게 모여 앉았다.
따가운 햇살 아래 하얀 담벼락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모습이 오래전 내 어릴 적 모습을 보는 것처럼 반갑기도 하고 그 올망졸망한 얼굴과 맑은 웃음들이 작은 살구알같이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는 내내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일행들이 준비해간 사탕과 과자 봉지들을 받아들고 한동안 모여서 재잘대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고사리같은 손을 들어 인사하는 부룬쿨의 아이들.
사진 찍는다는 말에 어느 집 담벼락에 한 줄로 쭈욱 모여 앉았다.

 
그런데, 많은 아이들 중 한 아이가 유독 일행중 한 명을 아는 척을 한다.
그 일행은 4년전 이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나름 기억속에 새겨둔 시간이 있었나 보다.
그 일행도 마침 그 꼬마의 안부가 궁금해서 찾고 있던 차에 서로가 한 눈에 알아보았으니 그 반가움이야 말로 다할 수 있을까?
그 꼬마의 4년전 낯선 이방인에 대한 기억은 어떠했을까?
그 어린 기억속에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었던 모습이 궁금하기만 한데 4년전 찍었던 사진을 보여주니 신기해 하면서 수줍어 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어린 천사의 모습니다.
오늘의 커다란 이방인 아저씨와의 재회는 또 그 천사의 기억 속에 어떤 모습으로 남을런지...
나로서는 그 둘의 재회에 전혀 끼어들지 못하고 그저 바라볼뿐이었지만, 오지의 여행이 맺어준 작은 인연이 더없이 감사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소중한 인연은 다시 기약없는 시간속으로 남긴 채 일행들은 또 각자의 SUV에 몸을 싣는다.
마지막 남은 여정길. 느낌이 착잡하다.
 
마을을 나온지 얼마되지 않아 무르갑으로 향하던 중 말로만 듣던 천연 소금밭을 만난다.
이 곳은 오랜 옛날 바다였던 곳이 대륙의 이동으로 충돌로 융기해서 고원으로 형성된 터라 아직도 오래된 지층이나 암석 등에는 그 옛날 바닷속 흔적들이 종종 발견되기도 하는 곳이다.
이 곳의 소금도, 그 때의 바다밑 지형의 염분이 세월과 함께 지표 위로 올라오면서 자연히 생성된 소금밭의 산물이다.
그 유명한 히말라야 핑크 소금과 생성 기원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기에, 대략적인 짐작은 가는 바이지만 아직 상품화된 것을 본 적은 없다.
잘 관리만 한다면 충분한 상업적 가치가 있어 소득 형성에 작지 않은 역할을 할 수도 있을텐데 제대로 그 가치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거 같아 아쉬운 생각이 든다.

파노라마로 잡은 소금밭과 그 주변. 주변의 지형이 워낙 크고 장대해서 면적이 작아 보이지만 결코 작지 않다.
우측 중간 아래 작은 직사각형이 소금밭 관련 건물인듯 한데 건물 크기가 엄청 작게 보인다.
소금밭 옆으로 길게 늘어선 도로와 전신주들. 아마도 소금밭 개발과 관련이 있을듯.

 
고원에 길게 늘어선 전봇대와 나린히 하며 하이웨이를 달리던 중 일행의 고산 증세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 마음이 급하고 불안해진다.
일행의 증세도 그렇지만 나도 이미 엄청난 흙먼지와 건조한 기후 탓에 콧속이 엉망이 된지 오래기에 이래저래 불편함이 점점 커지던 차였다.
잠시 편하게 쉬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 기적같이 민가가 나타난다.
집 주인에게 양해를 구해 화장실도 가고 잠시 그늘에 서서 비포장 도로의 덜컹거림과 따가운 햇살을 피해 휴식을 취한다.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은 고원의 흙먼지 속에 민가가 있다.

 
워낙 외진 곳이라 사람이 그리울만도 하겠거니와 한국에서 온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는지 차라도 한 잔 하고 가라고 집주인이 넘치는 호의를 건네지만, 아쉽게 뿌리치고 다시 차에 오른다.
행여 전체 일행들과 어긋날까봐 마음도 쓰였거니와 컨디션도 안좋은 상태에서 집 주인의 초대는 그리 반가운 것만은 아니었던 것이 사실이다.

파란 하늘에 그림 그리듯 오가는 하얀 구름들 사이로 기분좋게 뻗어나간 파미르 하이웨이

 
다만 잠시라도 몸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차분히 쉬어갈 수 있었기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초록색 지붕의 검문소가 나타난다.
멀리 하얀색 낮은 건물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보니 무르갑이다.
닫혀있는 게이트를 열기 위해 막스가 검문소 안으로 들어가고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게이트가 열린다.
차는 드디어 마지막 숙소가 있는 무르갑으로 들어간다.
오늘은 여기서 파미르의 마지막 밤이 예정되어 있고, 하늘의 구름만 사그러든다면 파미르의 은하수도 함께 카메라에 담아볼 수 있으리라.

무르갑 입구의 검문소. 도로의 주요 포인트 마다 군인이 근무하는 검문소가 있다.

 
그러나, 여행을 다니다 보면 마냥 내뜻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무르갑에서 나머지 일행들과 점심을 하기로 하고 기다리는 동안 일행의 컨디션이 급격히 악화된다.
이 상태로는 이틀 밤을 더 고원지대에서 머무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당장 낮은 지대로 이동해야할 상황이다.
본인의 의견도 다를 바가 없어, 나를 포함해서 컨디션이 좋지 않은 3명의 인원을 SUV 한 대에 태워 호로그로 먼저 내려가기로 한다.
무르갑에서의 일정은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하고 고작 숙소에서 먹은 점심 식사가 전부가 되어버렸다.
 
이후 호로그까지의 일정은 사진 촬영과 고원의 풍경 감상은 배제하고 빠른 시간 내에 이동하는 것이 주가 되었기에 경로를 달리해서  M41도로를 통해 질러가기로 한다.

원래의 하이웨이보다 비교적 뒤에 개통된 M41도로는 포장 상태가 조금은 나아 보이고 곡선보다는 직선 구간이 상대적으로 많다

 
출발하면서 앞전 호로그에서 묵었던 호텔로 급하게 연락하여 방을 예약하고 다시 돌아가는데, 질러가는 거리는  270km 정도, 대략 6시간을 쉬지 않고 흙먼지 길을 달려야 한다.
마스크의 용도가 이미 코로나 방역용이 아니라 콧속으로 밀려드는 흙먼지를 막는 용도로 바뀐지가 오래였고 그만큼 콧속 상태도 엉망이 되어 숨쉬기 조차 불편할 정도였다.
고질적인 비염증세에 고원의 메마른 흙먼지가 가세하니 콧속은 피딱지로 만신창이가 되어 버릴 수 밖에...
빨리 내려가서 시원한 물로 씻어내고 싶은 마음에 더 조급해지고 길은 더 멀게만 느껴진다.
그나마 지름길로 온 덕분에 그리 늦지 않은 저녁 무렵 숙소에 도착하고 지친 3명은 가벼운 샤워 후 곧바로 곯아 떨어져 하루를 마감하였다.
 
이미 정해진 일정에서 벗어나 있던 터라, 그 이튿날은 아무의 간섭이나 일정에 쫓기지 않는 완연한 자유 여행의 참맛을 누릴 수 있는 하루다.
느지막하게 일어나 호텔 조식을 먹고 따끈한 홍차와 커피 한 잔으로 속을 데운다.
나이 50줄을 넘어선 남정네 셋이 앉아서 아침부터 수다를 여는데 하나같이 각자 살아온 시간들에 대한 속깊은 얘기들이다.
고착 몇일밖에 되지 않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흔하지 않은 경험을 공유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서로간의 심리적 거리는 상당히 가까와져 있었나보다.
길동무란 그런 것이다. 여행길이 가져다 주는 인연이란 또 그런 것이다.
글 길위에서 그 시간 속에서 서로를 내어주며 그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을 만들어 가는 것.
 
하루 왠종일 호로그 시내를 돌아다니며, 특별하지 않은 그저 일상일뿐인 현지인들의 사는 모습을 이방인의 눈으로 하나하나 촘촘히 살펴보며 시간을 보낸다.

중앙아시아권에는 우리나라 차들이 많이 다닌다. 호로그 뒷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국산 트럭. 한국인을 만난 것처럼 반갑다.

 

시내 도로 시원한 나무그늘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서 더위를 식힌다. 제법 맛이 수준급이다.

 
저녁 시간이 지나 호텔에 들어서니 일행들로부터 내일 아침에 다르보즈에서 합류하자는 내용의 전갈이 와있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를 태우고 갈 SUV가 호텔로 왔다.
조식을 간단히 마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차에 오른다.
이제는 정말 호로그에 다시 올 일이 있을까? 아마도 기약없는 이별이 될 것이겠지만 머지않은 시간 내에 다시 올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다르보즈로 가는 길은 먼지는 다소 덜 날리고, 도로의 포장 상태도 양호해서 이틀전 무르갑에서 내려올 때와는 너무나 다른 컨디션이다.
한껏 여유있는 마음으로 이동하던 중 길가에 고장이 난듯 보이는 차량 한 대가 보닛을 열어 젖히고 서있다.
우리 차도 앞에 세우고 알아보고 도와줄 수 있는지 사정을 알아보러 간다.
열악한 도로 환경에, 자동차 정비를 위한 인프라가 기본적으로 부족한 곳이다 보니 운행중 고장이 나면 이렇게 도와줄 차가 지나가기를 하염없이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아마도 뜨거운 열기로 인한 엔진 과열이었던듯. 우리 차로부터 물을 공급 받고 난 후 다시 시동이 걸린다.

 
우리 차의 운전 기사가 고장난 차에 도움을 주는 동안 우리 일행은 주변 풍경 감상에 열심이다.
다행히도 고장난 차를 만난 곳은 풍경이 제법 멋드러진 곳이라 뜨거운 햇살에도 불구하고 사진 찍느라 이러저리 다니기에 여념이 없다.

다르보즈로 가는 길. 멋진 계곡가에서 고장난 차를 도와주는 덕에 잠시 풍경에 취해본다.
함께했던 동갑내기 일행. 톡톡 튀는 센스가 매력이었던 친구. 짧은 기간 동안 제법 가까와졌었나 보다.

 
점심 식사는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 정원이 딸린 야외 식당에서 현지식으로 마치고, 내려쬐는 고원의 햇살을 안고 다시 한참을 달린다.

점심을 먹었던 현지 식당의 전경. 약간의 바가지를 쓴 것 처럼 음식값은 좀 비쌌지만 나름 분위기는 괜찮았다.

 
오후가 되니 차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한층 더 기승을 부리는데 별안간 어디선가 들리는 시원한 물소리가 주의를 끌어 차를 세우니 녹아내린 빙하수가 폭포처럼 흐르는 작은 마을이 보인다.
두말 없이 내려서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 차에서 내려 냉장고 속 시원한 음료를 하나씩 꺼내어 목을 축인다.

러시아 문자가 씌여진 코카콜라 캔. 세상이 많이 변했다.

 
상점과 숙소가 있는, 마치 오아시스 같은 작은 마을이다.
빙하수가 폭포처럼 녹아내리는 개울의 물은 옅은 초록색을 띠며 만년설에서 왔음을 은근히 자랑이라도 하듯 요란하게 흘러 내리는데, 옆에 서있기만 해도 강력 에어컨 바람을 쐬는 것 같은 시원함이 느껴진다.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빙하수. 옆에 서있기만 해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마을의 상징인듯 거대한 나무가 빙하수 폭포 옆을 듬직하게 지키고 서서 냉장고 보다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나무 아래 서있는 성인 남사의 키와 비교해보면 나무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마을 어르신들과 나무그늘 아래서 기념촬영도 하고...

기본적으로 외지인에 대한 개방적인 성향이 강하다. 특히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는 매우 높아 보인다.

 

본인들이 찍힌 사진을 보여달라는 요청에 보여주니 매우 즐거워 한다.

 
그렇게 다시금 차를 몰아 내려온 길을 뒤로한 채 파미르와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닥 긴 시간도 아니지만, 마치 여러 달을 보낸 것처럼 이미 몸과 마음은 파미르에 동화되어 있었고 눈에 보이는 것과 피부로 느껴지는 모든 것들을 파미르와 연관 지어 생각하고 있었다.
그 어떤 강한 인연과 이끌림 때문이었을까?
고원의 세찬 바람과 끝없이 흘러만 가던 하얀 구름들 사이로 아이들의 미소가 영원히 지지 않을 들꽃송이 처럼 밝게 빛나던 그 곳.
 
짧은 만남 긴 이별.
 
다르보즈에 도착하니 이미 일행들은 숙소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고, 그 재회를 끝으로 파미르 고원에서의 길지만 짧은, 짧지만 길었던 나의 시간들은 마침표를 찍는다.

자신들이 찍힌 동영상을 들여다 보며 마냥 신기해 하고 즐거워 하는 다르보즈의 아이들
가벼운 손인사에도 더없이 맑은 미소로 수줍은듯 답해주는 꼬마 천사들. 그 웃음이 있어 파미르는 결코 거칠지 않다

 
그 날 밤, 다르보즈의 밤하늘엔 유난히 별들이 많았다.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담은 고원의 밤하늘. 구름도 없이 맑은 하늘이었다.

 
파미르를 떠나며.

눈부신 햇살, 만년설, 거친 흙먼지...그리고 천사의 웃음. 아듀, 파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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