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온 길

지리산 둘레길 3구간~4구간(인월~금계~동강)

나무 향기 2019. 9. 22. 12:11
728x90

2013년 6월

 

난생처음 걸어본 전날의 둘레길 여정의 싱그러움과 지리산자락의

청명함 때문이었는지 아침 일찍 눈을 떴음에도 기분은 개운했다.

아침상을 함께한 일행은 나를 포함해서 5명.

교직에 계신 젊은 남자 선생님과 작은 개인 가게를 하고 있다는 어린 청년.

누나와 남동생

(처음엔 젊은 연인인줄..^^, 휴가 나온 현역 군인 남동생을 데리고 둘레길을...열혈 누나다. )

하나같이 선한 인상,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 했던가. 밥상 머리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주인 아주머니께서 차려주신 아침상은 지리산의 정취가 듬뿍 담긴 자연 그대로의 정찬이었다.

(그 당시 찍어놓은 사진이 없어서 참 아쉬운...ㅠㅠ)

 

처음 보는 이들과의 아침식사를 다소 어색한 인삿말과 함께 마무리하고 각자 길을 나선다.

아마도 3코스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게 되겠지...

길이란 그렇게 이어지고 또 이어주기도 하는 거니까.

 

3코스는 마을 한 켠에 잘 조성되어 있는 "국악의 성지"를 둘러보며 시작한다.

조성된 지가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듯. 토요일 상설 국악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남원은 동편제의 시조라 불리우는 송흥록이 태어난 곳이다.

이런 고장에 우리 판소리를 보전 발전시키기 위한 문화 시설이 들어선 것은

늦었지만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지리산 둘레길 코스와 연계해서 문화체험 코스로 갈수록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반갑기만 하다.

 

국악의 성지 중앙 마당에서 둘러본 풍경. 매우 깔끔하게 잘 관리되고 있다.
방문 시간이 아침 이른 시간이라 내부는 둘러보지 못하고 본관 앞에서 마을 전경을 보는 것으로 달래본다. 중앙의 소나무가 기품이 예사롭지 않다

 

 

남원자랑 > 국악의성지 > 국악의성지 소개

민족의 영산 지리산 자락 운봉에 위치하고 있는 국악의 성지는 우리 민족의 전통과 혼이 담긴 국악의 본 고장이요, 성지임을 널리 알리기 위해 국악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의 염원을 모아 조성하였다.

www.namwon.go.kr

3코스는 지리산 북부 마을길과 옛고갯길을 통해서 지리산의 주능선을

남쪽으로 바라보며 걷는 숲길이며, 둘레길 전 코스를 들어 힘들기로

손꼽히는 구간 중 하나다.

국악의 성지를 둘러본 후 곧바로 본격적으로 코스로 진입하는데 임도길로 시작한다.

 

 

곳곳에서 혼자 찍는 거울 셀카도 혼자 걷는 길의 재미 중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다. 혼자이기에 사진은 항상 셀카로 알아서 ... ㅎ

 

3코스를 걷다보면 가장 많이 보게 되는 풍경이 다랭이논이다.

어쩌면 코스의 메인 테마이기도 하겠다.

언젠가 맨처음 이 깊은 산골 마을에 들어와 산비탈을 깎아 다랭이논을 개간했던

이가 있을텐데 어쩐 사연으로 이 깊은 골짜기까지 들어와서 논과 밭을 일구게 되었을까?

아주 오래전 전설같은 이야기가 갑자기 궁금해진다.

 

조그만 실개천이라도 있는 낮은 계곡이면 어김없이 다랭이논과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언덕에서 내려다 본 산골 마을이 무척 서정적이다.
살고 있는 사람이야 다르겠지만, 지나가는 길손의 눈에는 논 아래로 펼쳐진 전경도 한 폭의 그림이다.

힘들기로 소문난 3코스이지만, 앞서 그 당시 독보적인 시청률을 보유하고 있던

1박2일이란 예능 프로그램에서 강호동과 김종민이 특유의 예능감으로 다녀가며

전국적으로 방송을 탔던 구간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남녀 가리지 않고 유독 찾는 발길이 많은 구간이고, 아직도 그 인기는

둘레길 코스중 단연 상위에 올라있다.

그렇지만, 거의 산길로 이루어져 오르락 내리락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기에

길손들의 목에 끊임없이 갈증을 안겨주는 만만치않은 코스이다.

 

인월-금계

인월 - 금계 20.5km 약 8시간 인월 - 금계 : 상 금계 - 인월 : 상 구간별 경유지 황매암경유(20.5km) : 구인월교 – 중군마을(2.1km) – 수성대(2.9km) – 배너미재(0.8km) – 장항마을(1.1km) – 서진암(2.5km) – 상황마을(3.5km) – 등구재(1km) – 창원마을(3.1km) – 금계마을(3.5km) 삼신암경유(19.8km) : 구인월교 – 중군마을(2.1km) – 황매암갈림길(0.8km) – 수성대입구(1.

jirisantrail.kr

코스가 힘든 만큼 길 중간중간에 쉼터나 마을 매점들이 적당히 자리잡고 있어 지친 발길을 쉬어갈 수 있다.

높은 언덕마루에 자리잡은 간이주막에서는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생명수로 탈바꿈한다. ㅋㅋ
마을을 옮겨가는 길 중간에 흥미로운 간판을 만났다. 슬쩍 들러보면 덥고 지친 심신에 청량제가 되어줄 수도 있을듯. ㅋㅋ

이 무렵, 여러 마을을 거쳐 오는 동안, 오늘 아침 민박집에서 어색한 밥상을 같이 했었던

민박집 일행들과 어느새 동행이 되어 있었다.

같은 길을 한 날 한 시에 걷고 있었으니 애초에 만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길 가다 만나고, 길가에 앉아 쉬다 만나고, 사진 찍다 만나고....^^;

 

3코스의 특징은 한 마디로, 끝날듯 끝날듯 끝나지 않는 언덕길의 연속.

미리 마음 먹고 나서지 않으면, 그 끈질김에 지쳐서 왠만한 오기가 아니면 하루에 마치기가 쉽지 않다.

그런 길을, 뜻하지 않게 함께했던 길동무들의 덕으로 길고 험한 3코스를 하루가 지나기 전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이 다행스럽다.

 

마을 마다 놓여진 오래된 평상에서의 잠깐의 휴식은 정말이지 꿀맛이다. 더운 한낮의 열기에 나무그늘와 시원한 산바람이라니..^^

어찌어찌 힘들게 금계마을까지 도착한 때는 어느덧 그림자가 길어질 무렵이었다.

3코스는 인기도가 높아 찾은 이가 많아서인지, 코스의 끝지점인 금계마을에는

새로 지어진 민박/펜션이 많았고 마을 규모도 여느 산골마을과는 달리 제법 큰 모습이었다.

그러나 여행객들이 많은 만큼 숙소도 당연히 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우리는 일행중 누구도 미리 숙소를 예약하지 않았던 터라 마을에 들어서서부터

한동안 숙소를 잡느라 한동안 분주했던 기억이다. 반드시 숙소를 사전에 예약하고 가기를 권장한다.

 

금계마을 숙소 찾던 중 방문했던 펜션의 야외 테라스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 평화롭고 정갈하다.

 

혼자 나섰던 둘레길 여정이 어느새 5명의 일행으로 바뀌고,

1인 숙소만 생각하고 아무 준비없이 왔다가 5명 숙소를 찾으려니

당연히 숙소 구하기가 쉽지 않다.

어찌어찌 마을 안쪽까지 할머니 한 분이 혼자 기거하는 민박집에서 묵기로 하고 짐을 푼다.

앞마당이 아기자기하다.

힘들게 구한 숙소 앞마당에서 일행들과 기쁨의 기념샷. 인원이 많으니 숙소 구하기가 녹록치 않았다..ㅠㅠ

짐을 풀고 각자 깨끗이 땀을 씻고 보니 서서히 시장기가 몰려온다.

일행중 한 명이 마을까지 오는 길에 신세가 많았다며 저녁을 사기로 한다.

삼겹살에 가벼운 맥주로 하루의 피로를 깔끔히 날려 버린다.  최고의 저녁 만찬이었다.

오리지널 지리산 토종 흑돼지를 지리산 자락에서 맛보았다. 아직도 그 때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다음 날 이어진 4코스 여정엔 일행중 교직에 있는 남자 선생님만 같이 가게 되었다.

휴가 나온 남동생과 같이 왔던 남매는 부대 복귀 일정 때문에, 어제 삼겹살을 후하게 한 턱 냈던

젊은 사장님은 체력적 부담으로 일정을 더 할 수 없었다.

 

4코스는 금계마을에서 시작되는 초입부분을 제외하고는 3코스와는 정반대로

엄천강을 따라 도로길을 주로 걷게 되는 11km 길이다.

 

금계-동강

금계 - 동강 11km/12.7km(벽송사경유) 4시간/5시간(벽송사경유) 금계 - 동강 : 중 동강 - 금계 : 중 금계-동강 구간 경유지 금계마을 – 의중마을(0.7km) – 모전마을(용유담)(3.1km) - 세동마을(2.4km) – 운서마을(3.3km) – 구시락재(0.7km) – 동강마을(0.8km) 금계-동강 구간 벽송사 경유지 금계마을 – 의중마을(0.7km) – 벽송사(2.1km) – 모전마을(용유담)(2.8km) – 세동마을(2.3km) –

jirisantrail.kr

산길 숲길 속에서 중간중간 아래로 내려다 보던 어제의 3코스와는 매우 다르게

길을 걷는 내내 강 건너로 보이는 넓은 시야로 지리산 자락의 아기자기한

작은 능선을 바라보며 유유자적 여행길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쉬어갈 나무 그늘이 드물지만 살랑살랑 불어주는 강바람이 기분좋게 온 몸을

감싸주기에 마치 특급 냉방차를 타고 유람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길 따라 걸으며 엄천강 줄기 따라 꾸며진 마을과 주변 풍경이 정원처럼 느껴지는 건 그 만큼 지리산의 품이 넓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4코스는 급하게 속도를 붙여서 걷는 길이라기 보다 천천히 흐르는 강물처럼

여유를 가지고 주변의 풀과 나무와 하늘과 함께 마음을 열어 놓고 걷는 길이지 싶다.

걷다가 마음 내키면 길 아래 넓은 강으로 내려가 발 담그고 뜨거운 자갈밭에

젖은 양말도 말리며 한 숨 돌리는 풍류도 4코스만이 가지는 매력일 것이다.

중간중간에 강으로 내려서서 시원한 강물에 발 담그고 잠시 물 한 모금 마시는 그 여유가 한 번씩 그리워진다.

 

4코스는 동강마을에서 끝이 난다.

같이 강따라 걸었던 일행분도 체력적으로 많이 지쳐 있었고 나도 그러했다.

다음 날 일상으로의 원만한 복귀를 위해서 5코스는 다음으로 남겨두고

4코스에서 일정을 마무리하기로 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4코스가 끝나는 동강마을에서는 시외로 나가는 버스편이 여의치 않아

좀 더 걸어서 현대사의 아픔이 서려있는 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까지 걷는다.

5코스의 초입이다. 다음에 5코스로 올 때엔 굳이 동강마을 입구까지 오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 ㅎ

 

2박3일간의 지리산 둘레길 첫 여정은 4코스에서 끝이 났다.

약 55km의 산길, 숲길, 마을길, 논두렁길, 강변길....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만났던 여러 사람들과 인연들. 여행은 그런 것 같다.

혼자라도 외롭지 않고 혼자라도 혼자이지 않은...

그 속에 수많은 뜻하지 않은 인연들이 기다리고 있기에 항상 새로운 만남이

나를 새롭게 해주는, 그러나 그 만남은 반드시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오히려, 혼자였기에 더 여럿이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게 내가 혼자 길을 나서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설레임과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남원행 고속 버스를 탔던 그 때 그 순간...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평생동안 간직할 순간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