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온 길

한양 도성 순성길을 가다

나무 향기 2019. 10. 16.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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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도성...

옛 조선의 수도 한양의 외곽을 둘러싸고 외적으로 부터 나라의 도읍지를 지키기 위해

쌓은 성이다.

물론, 지금 와서 보면 외적의 침입으로 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한 치열한 싸움의 역사 보다

그저 도망가기 바빴던 역사가 더 많았으니, 애초에 태조 이성계가 이 곳에 도읍을 열면서

도성을 쌓았던 의미가 민망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어쨌거나, 600년 도읍지로서의 세월과 일제 강점기, 한국 전쟁 등 이 땅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들을 묵묵히 지켜보며 지금의 시간을 함께하고 있다는 것.

대견하고 대단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도읍지의 옛모습을 느껴 보고자 하늘 푸르고 바람 좋은 가을 주말에 복장을 차리고

길을 나섰다.

 

한양 도성을 따라 걷는다는 의미에서 한양 도성 순성길이라고 불리우며, 각 코스별

안내는 서울시에서 따로 운영하는 웹페이지에서 상세히 알아볼 수 있으며, 인원이 된다면

해설사를 동반한 해설 프로그램도 신청이 가능하니 참고로 하면 좋을듯 하다.

 

한양도성

한양도성 웹사이트입니다.

seoulcitywall.seoul.go.kr

하루에 완주하기가 쉽지는 않다고는 하나 한 번 큰 마음 먹고 도전해 보기로 하고,

조금 이른 아침에 버스를 타고 1시간여를 지나 숭례문 앞에 도착.

순성길 코스 중 가장 힘든 인왕산-백악산 구간을 먼저 타고 시계 방향으로 도는 것이

체력적으로 부담이 없을 것 같다.

아침 햇살이 아직 비스듬히 비칠 무렵의 다소 한적한 아침의 숭례문
오늘의 예정 코스는 숭례문에서 시작해서 다시 숭례문까지...^^

휴대폰 지도앱을 꼼꼼히 살펴가며 순성길을 찾아보는데 처음이라 익숙치 않다.

숭례문 구간은 성곽이 유실되어 흔적을 찾기가 힘이 들기 때문에 표지판을 따라

걸어야 한다.

숭례문 앞의 큰 길을 건너게 되면 처음 만나게 되는 표지판.

갈림길 마다 설치되어있는 표지판. 회색 도시의 회색 표지판이라 눈여겨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도심 한가운데에 성곽돌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평소에는 무심히 지나치는 모습이었지만 순성길을 생각하며 보니 새삼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순성길 처음 만나게 되는 성곽길. 한양 도성 복원의 의미를 판에 새겨 놓았다.

 

옛 성곽돌 위에 최근 복원된 새돌이 놓였다. 역사위에 놓인 현재의 모습. 잠시 생각에 잠긴다.
정동 교회앞을 지나며 언덕밑 정동길의 노랫말을 흥얼 거려 본다. 가을 아침의 정동길은 고즈넉하기만 하다.

정동길을 지나 돈의문 터를 향한다.

일제 강점기에 일제에 의해 해체된 돈의문 터엔 강북삼성병원이 자리하고 있고, 병원 입구 사무실에서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경희궁 앞을 지나 본격적으로 인왕산 구간으로 진입하게 된다. 정상까지는 약 2.1km

경희궁 지나 인근 아파트 단지 앞에 조그만 카페가 앙증스럽게 자리잡고 있다. 오픈 전이라 그냥 지나칠 수 밖에..ㅜㅜ 

제법 가파른 초입을 오르면 성곽길 테마로 조성된 공원이 나온다.

순성길 안내판이 친절한 모습으로 반겨준다. 성곽길은 공원으로 향한다.

공원지대를 지나 순성길은 다시 빌라촌으로 변한다. 다들 이 지점에서 한 번씩은 머뭇거린다.

성벽이 무너진 자리에 전깃줄과 빌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지키지 못하는 역사는 이렇게 잊혀져 간다.
그래도 꿋꿋이 인왕산 정상으로 가리키고 있다.
성곽따라 곱게 핀 코스모스. 청량제가 따로 없다. ㅎ

범바위 지나 인왕산 정상 직전에서 인왕산 주 능선의 오른쪽으로 순성길은 이어진다.

인왕산 정상을 지나 직진하게 되면 순성길이 아니라 기차바위로 가게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인왕산 정상에서 창의문쪽으로 내려가야 올바른 순성길이다.
성곽길을 따라 내려오다 만나게 되는 서울 전경이 세월을 뛰어 넘어 가슴에 와닿는다.

청운 공원 방향으로 내려오게 되면 윤동주 문학관이 보인다.

이런 곳에서 윤동주 님을 만나게 될 줄이야...

 

윤동주 문학관은 바로 옆 창의문과 이웃해 있다.

창의문부터 시작되는 백악구간은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기습 사건과 연관되어 있는 구간이다.

창의문. 현재 유일하게 조선시대에 건축된 성루가 보존되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창의문 옆계단을 따라 창의문 안내소에서 표찰을 받아야 한다.

예전에는 신분증 지참하여 일정 양식의 서류를 작성했으나, 4월부터 폐지되고 지금은 아무런

절차없이 표찰을 배부해준다. 단, 나중에 말바위 안내소서 나갈 때는 반드시 반환하여야 하므로

중간에 분실하지 않도록 꼭 목에 걸고 다니는 것이 좋다.

창의문문 앞 안내판과 백악구간 탐방 표찰.

김신조 사건의 흔적은 유명한 총탄 자국 소나무 뿐만 아니라 성곽길과 함께 나란히 이어지는

군사보안용 철조망에서도 엿볼 수 있다.

백악구간은 오르내림이 심하고 경사가 급해서 어느 정도의 체력이 요구되는 구간이다.
숙정문을 지나 말바위로 곧장 향한다.

인왕-백악 구간을 연이어 걷기란 웬만한 체력으로는 힘에 버거울 수도 있다.

특히 백악 구간은 길이 좁고 경사가 급한 계단이 이어지기에 혼자 지쳐서 중간에 서버리면

뒤에 오는 다른 사람까지 길이 막히게 되므로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한 구간이다.

창의문 안내소에서 받은 표찰을 여기서 반납하게 된다. 숙정문의 스탬프도 여기 안내소에서 찍도록 한다.

이제 남은 구간은 절반 정도..성북동을 지나 혜화문까지 가면 흥인지문이 있는 도심으로 진입하게 된다.

슬슬 시장기가 돈다.  혜화동에서 맛갈난 점심을 먹기로 하고 힘내어서 다시 걷는다.

말바위에서 와룡공원으로 가는 길 좌측으로 펼쳐진 성북동 전경. 바로 이웃해 있는 두 마을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성북동 나름 유명한 돈까스 집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곧장 또 길을 나선다.

돈까스집 바로 옆 골목길이 순성길이다. 바로 앞에 순성길 표지판이 보인다.

돈까스집 골목부터 경신고등학교 인근 동네까지 이어지는 길은 성곽이 그대로 축대나 주춧돌로 사용되어

그 위에 현재 건물들이 세워져 있다.

나라 잃은 도성의 성곽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그냥 집짓기 좋은 돌더미였을 뿐이었으리라.

 

혜화문으로 이어지는 문이다. 혜화문부터 이어지는 구간은 낙산 2구간이다.

 

낙산2구간은 순성길 전 구간을 통틀어 가장 걷기에 부담이 없고 아기자기하게 단장이 된,

데이트 코스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길인 것 같다.

해설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해설사와 동반해서 걷는다면 좋을 구간이다. 적극 추천..

아기들과 함께 산책 나온 젊은 엄마들, 두 손 꼭 잡고 거니는 젊은 연인들 모두 평화로운 모습이다.

낙산 2구간은 낭만적이고 평화로운 길이다.
젊은 연인들이 사진찍기 좋아하는 이화마을도 낙산 2구간에 위치하고 있다.

이화마을을 지나 잘 정비된 성곽길을 따라 걷다보면 멀리 흥인지문을 만나게 된다.

한양 도성 4대문 중 서고동저인 한양의 지세에 따라 유일하게 성문 바깥으로 옹성을 쌓아 올려

취약한 방어력을 보완한 것이 흥인지문이다.

흥인지문까지의 성곽길이 잘 복원되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읍지로서의 위풍이 제대로 풍겨난다.
흥인지문과 각자성석...누가 쌓은 것인지 표기해 놓은 일종의 성벽 실명제이다.

순성길은 청계천을 지나 DDP로 이어지지만 이 구간은 성곽이 유실되어 흔적이 없는 구간이므로

표지판과 지도를 꼼꼼히 챙겨 보며 가야한다.

DDP 공사 중 발굴된 조선시대 이간 수문이다. 그 자리 그대로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되어 있어 DDP의 역사 명소가 되어있다.

흥인지문 유실구간을 지나면 다음은 광희문으로 가야한다.

이 구간도 도로로 인해 성곽은 유실되고 광희문만 남아 오랜 흔적을 보이며 남아있는데 여러번 길을

건넌 다음에야 DDP에서 광희문으로 갈 수 있다.

광희문 성곽이 끊긴 구간은 달빛로드라는 이름의 작은 골목길로 단장되어 있다
나름 정비된 동네 골목길의 경계선으로 남아있는 광희문 구간의 성곽 일부. 저 끝에 보이는 길을 건너면 숭례문 구간으로 들어가게 된다.

광희문 달빛로드를 지나 길을 건너면 지금의 신세계 면세점 좌측으로 이어지는 숭례문 구간에

이르게 된다. 이 구간은 비교적 옛 성곽이 원래의 모습 그대로 잘 보전되어 있는 구간이다.

성석이 작고 모양이 둥글며 오래되어 검은 돌이끼가 끼어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 축성부분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숭례문 구간은 국립극장 해오름을 지나 남산을 가로지르는 구간이다.

제법 경사가 급하고 오르막길이 계속되므로 앞서 걸었던 인왕,백악 구간과 더불어 난이도가

높은 구간으로 꼽힌다.

국립극장 해오름과 남산타워로 가는 이정표.
숭례문 구간의 성곽에는 성벽 총안구 위에 옥개석이 없는 것이 특징적이다.

남산은 옛지명이 목멱산으로 불리웠으므로 도성 순성길 구간명도 목멱구간으로 명명되어있다.

성석이 작고 모양이 불규칙하면서도 질서정연하게 쌓여있는 모습에서 옛 사람들이 쏟았던 많은 노력과

비상한 손재주가 새삼스레 대단하게 느껴진다.

 

팔각정을 왼쪽으로 끼고 내려오게 되면 남산 제일의 전망 포인트인 잠두봉 전망대가 나온다.

깨끗한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진 600년 도읍지의 전경이 도성을 둘러싼 산 봉우리와 어울려

멋진 장관을 이룬다.

서울의 전경에 푹 빠진 관광객들로 난간이 빌 틈이 없다
멀리 좌측 산 능선위로 아침에 올랐던 인왕 구간의 성곽이 보인다.

남산 도서관을 중심으로 안중근 의사 기념공원과 백범 광장이 차례로 조성되어 독립의 민족혼을

느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마냥 걷다가 뜻하지 않게 옷깃을 여미게 되었다. 두 분의 서 계신 모습은 영원히 겨레와 함께 하리라.
내려오는 길에 되돌아 본 남산의 모습. 유난히 아름답다.
순성길의 시작점이자 마지막점인 숭례문까지 550m
한국은행 본점으로 내려가는 길 위에 현대식 빌딩과 함께 어우러진 옛 성곽길. 유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만이 누릴 수 있는 시간의 조화가 아닌가.

드디어 숭례문에 도착. 순성길 완주가 끝이 났다.

공식적인 한양 순성길은 18.6km이지만 길을 잘못 들어서 헤매거나 주변을 구경하느라 둘렀던 거리까지 총 23.8km를 걸었다.

 

요즘 시국이 가는 곳 마다 요란스럽다. 바다 건너 이웃 나라의 희한한 작태도 그렇고...

그러나, 길게 돌이켜 보면 우리 역사상 한 시대라도 조용한 적이 있었던가?

수백년을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양 도성 성곽의 수많은 성석들이 보았던

그 많은 시간 속의 희로애락들이 어쩌면, 지금의 대한민국을 떠받치고 있는 주춧돌이 아닐까...

 

맑고 푸른 대한의 가을 하늘 아래 걸었던 한양 도성 순성길 속에서 지금껏 무심코 지나쳐 왔던

많은 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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