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온 길

성인봉을 오르다

나무 향기 2020. 7. 11. 18:35
728x90

울릉도 3박4일 일정의 마지막 아침.
애초에 가족들과 함께 성인봉을 같이 오르기로 계획을 하였으나, 의외의 피로감으로 인해 실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숱한 고민 끝에 마지막 날 아침 비록 처음 계획했던 종주는 아니더라도 성인봉 정상은 오르고 가기로

마음먹고 새벽 길을 나선다.
숙소 퇴실 시간까지는 돌아와야 한다.

현재 시각 새벽4시20분.
KBS중계소 원점 회귀 코스로 간다면 퇴실 전까지는 충분한 시간.
무쇠같이 무거운 두 어깨를 바닥에서 뜯어올려 서둘러 준비를 하고 렌트카의 시동을 건다.

성인봉을 오르는 코스는 대략 4가지 정도가 있지만 가장 일반적으로 선택하는 코스가 KBS중계소 코스이다.

네비에 KBS울릉 중계소로 찍고 가면, 중계소를 지나 조금 더 가서 작은 주차장이 나오고 산행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KBS중계소 윗쪽의 작은 주차장. 이른 시각이라 아직 차는 한 대도 없다.

등산로는 짧은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 잠시 오르면 이후 본격 등산로가 시작되는데 길 폭이 좁고

숲이 우거져 마치 원시 산림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다.

성인봉 등산로. 주변의 나무와 풀들이 육지의 그것들과는 매우 다르다. 음지 식물이 매우 많다.


성인봉은 화산 분출로 생성되었지만, 같은 화산섬인 제주도와는 달리 용암석 보다는 흙이 많아

걷기에는 한결 편하다.
다만, 여느 산과는 다르게 오르내림이 거의 없고 줄기차게 오름질만 심하게 이어지고 초입부터

경사각도 제법 급해서 초보자들에겐 힘이 부칠 수 있겠다.

전체적으로 길이 좁고 풀들이 무성하다.

초반의 급경사 오르막 후에 평지가 나타나는데 이건...육지의 산에서 보던 식물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1km 남짓 오르다 보면 좁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나무 다리가 나온다.
무성한 나뭇잎 탓에 아래로 보이는 풍경이 많이 가려지지만, 잠시 서서 바람을 느끼며 드문드문 보이는

계곡 아래의 경치를 감상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일 것이다.

의외의 운치. 다리의 끝은 짧은 출렁다리로 마무리되어 색다른 분위기이다.
좁은 길 옆으로 무성한 음지식물 군락들. 마치 쥬라기 공원의 한 장면을 보는듯.. 어디서 공룡이라도 튀어나올 것같은 분위기다. 

앞서도 얘기했듯이, 성인봉은 등산로가 좁고 경사가 험해서 자칫 큰 사고가 날 수도 있기에
나홀로 산행은 위험하므로 가급적 피해야한다.
실제로 매년 낙상해서 사망하는 사고가 꾸준히 발생하기도 한다.

곳곳에 통행금지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비와 눈이 많은 울릉도이기에 끊어진 길들도 군데군데 있다.

1/3지점쯤이었을까? 정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햇살 좋은 곳에 탁 트인 전망으로 날씨 좋은 날이면 정말 시원한 물 한 모금 마시며 쉬어가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일 것

같다.

지어진 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은 정자. 이런 산중에 정자를 만나다니...

길인지 숲인지..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있는 구간도 제법 있다.

성인봉으로 가는 길은 말 그대로 원시림에 가까운 식물생태이기에 자연 상태의 동물들도 많이 나타난다.
간간히 새벽 인기척에 놀란 산짐승들의 갑작스런 움직임에나도 깜짝깜짝 놀란다.
몇번 반복되니 은근 무섭기도 하고 발을 헛디딜뻔한 적도 있을 정도이다.

길이 가려질 정도로 풀이 무성하게 자라있다.

이제 1km가 채 남지 않았다.
잠시 쉬어 바람을 통하여 원시림의 기운을 느껴본다.

 

 

마지막에 다가갈수록 경사는 가팔라진다.
길고 급한 이런 나무계단이 두 곳이다.
반대편 나리분지쪽에서 올라오는 길은 대부분 이런 계단길이라고는 하지만 직접 가보지 않았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리분지를 생각하며 오르다 문득, 그래도 성인봉하면 나리분지인데 그 이름을 보아서도 나리꽃이
좀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우연일까?
눈 앞에 노오란 나리꽃 한 송이 청초롬히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성인봉 인근에서 만난 섬말나리..노란 빛깔이 행복 그 차체이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사진 몇장을 찍고 둘러보니 주변이 온통 나리꽃이다.^^
거의 두 시간에 가까운 홀로 산행의 수고로움이 한 순간에 사라진다.
역시...꽃은..이렇기 때문에 꽃인가?
세상의 꽃들이 사랑받는 이유가 너무나 명확하다. 💕

산행중 나리꽃 군락지를 보게된다면 성인봉에 거의 다 온 것이다.

그리고, 무수히 많았던 산행중에,처음보는 0.02km 안내 표지판.
0.2km 200m 도 아니고 0.02km 20m? ㅎㅎ~~
여하튼 좀 웃는다.^^


과연,0.02km를 더 올라가니 성인봉이다.ㅎ

성인봉 정상석

애초에 성인봉 정상석 맞은 편으로 조금 더 가면, 나리분지와 미륵산 송곳산 등 울릉도의 주요 봉우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어 그 절경을 보고오려 했으나...
온통 구름에 싸여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 미련둘 거 없이 재빨리 출발점으로 회귀.

마지막 출발점에 도착하니..이런 문구가..
저 파란 탱크는 물탱크인가? 술탱크인가? 🤔🙄

그렇게, 10년의 시간을 벼르고 별렀던 성인봉 산행은 초간단 홀로 산행으로 마무리한다.
성인봉 정상에서의 360 트인 속시원한 전경은 비록 보지 못하였으나, 오르는 길목길목에서 느끼고
보았던 원시림의 숨결은 또 내 기억의 한 곳을 오래도록 장식하리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