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온 길

덕적도 비조봉에서 망중한을 즐기다.

나무 향기 2020. 10. 20.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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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강으로 다니던 발걸음이 이제는 바다를 건너 섬으로 향한다.

인천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1시간 30분 정도면 서해에서 제법 큰 섬인

덕적도에 이른다.

이미 백패킹 애호가들에게는 성지나 다름 없이 되어버린 유명세를 타고 있는

#덕적도.

애초에는 굴업도를 가고자 했었으나 굴업도를 들어가는 주말 배편을 주민이

아닌 일반인이 구하기는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알고서는, 미련없이 덕적도로

행선지를 변경해버렸다.

덕적도로 들어가는 배편은 #인천여객터미널 외에도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에서도

구할 수 있으며 대부도 쪽에서 가는 편이 시간도 조금 짧고 배편 요금도 싸기에

대부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대부도로 들어가는 길 자체가 거의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정체 구간인 데다 터미널 주차장도 협소해서 자가용을 이용하는 경우라면

그리 권할 바는 못된다.

그런 연유로 값싸고 짧은 거리의 대부도 대신 인천항을 통하여 덕적도로 들어간다.

엄청나게 붐비는 인천 터미널을 빠져나와 뱃길 따라 두둥실~~~

도착한 곳은 덕적도 #진리항. 최종 목적지인 서포리 해안으로 가려면 다시 마을 버스를 타고

20여분을 가야한다. 승객들 대부분이 커다란 배낭을 가지고 타는 터라 버스 안은

그야말로 북새통.

버스는 배 시간에 맞춰 운행된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시골 마을 버스인지라 시간이

그리 정확하지는 않다.

버스는 배를 내린 항구에서 하나로 마트 방향으로 350미터 정도 올라간 덕적 바다역이라는 곳에서 승차할 수 있다.

 

버스를 기다리며 바라본 맞은편 식당. 분식집 아주머니의 손맛이 제법 맛갈지다.

 

어렵사리 도착한 #서포리 해안.

아침 이른 배로 도착했음에도 해변 곳곳 괜찮은 자리에는 벌써 듬성듬성 여러 텐트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과연 이름값을 하는 곳은 다르다.

서포리 해안 입구. 데크로 놓인 해변 입구에는 어린 소나무들이 인사하듯 양옆으로 늘어서 있다.

질세라 서둘러 남은 자리중 그나마 전망이 좋은 곳을 골라 텐트를 펴고, 새벽 잠 설쳐 나온 하루의 긴장을

따뜻한 캔 커피 하나에 실어 한낮의 망중한을 즐긴다.

봄인지 가을인지 모를 기분 좋은 한낮의 햇살에 한없는 여유를 느껴본다. 얼마만인가...

역시 서해 바다인가, 바닷물이 들고 나는 시간 간격이 짧아 거의 쉴 틈이 없이 밀물과 썰물이 반복된다.

그래도 나름 서해의 섬으로 왔으니 갯펄은 밟아 봐야 하지 않겠는가?

자칫 정신을 놓을 참이면 바로 발앞까지 물이 차들어 온다.

 

 

나른한 가을 햇살에 부서지는 물비늘이 나만을 위한 선물인듯 보석 처럼 빛나고, 그 반짝임의 유혹에

못이겨 아직 채 물이 들어서지 않은 모래톱으로 발길을 옮겨서니 어느덧 마음은 오래 전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고 있었다.

서포리 해안의 윤슬

 

갯펄 속 작은 생명들이 만들어 놓은 재미있는 예술 작품들 ㅎㅎ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을 물빠진 갯펄에서 놀다 보니 밀물이 들고, 해변에는 어느새 늘어난 텐트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코로나로 답답해진 마음을 비우고 싶은 심정이야 다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넓은 자연에서 조금이나마 풀고 가길...

 

해변을 돌았으니 이제는 해변 뒤로 펼쳐진 송림으로 가보기로 한다.

족히 수백년은 되어 보이는 수많은 소나무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며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아마도 전 세계 소나무들 중에 생김새만 놓고 본다면 대한민국 소나무가

최고인듯 싶다.

한 그루 한 그루가 마치 미술 조각인양 멋드러지게 서있다.

 

 

송림까지 둘러보고 나니 출출해진 속을 달래려, 가져간 술과 고기로 조촐하게 풍류 넘치는

오후의 반상을 차려본다.

한 잔 따르고 한 점 먹고를 여러번...그렇게 나른하게 내리쬐던 가을 햇살이 뉘엿뉘엿 수평선 끝으로

넘어간다.

 

석양에 물든 바닷가에 서서 모래 장난에 마냥 신이 난 두 꼬맹이의 놀잇짓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또 다시 그 옛날 어릴 적의 나를 소환해 본다.

수평선 가운데로 넘어가 주면 더없이 멋진 #석양 컷을 담을 수 있으련만, 오늘 서포리 해안과는 일몰각이

조금 안맞다. 그래도 저 정도면 무공해 일몰. 크게 불만은 없다.

해안에 펼쳐진 텐트들의 실루엣이 모델이 되어 마지막 석양의 그림을 완성해 준다.

 

서포리 해변의 노을

 

해가 넘어가자 해변은 급하게 쌀쌀해지고, 그렇게 차가와진 해변에서의 밤은

남은 술병이 비워질 때까지 바람과 별빛과 파도소리와 함께 그렇게 깊어 간다...

다음날 아침 파도 소리에 눈을 떠보니 산등성이에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걸쳐있다.

어제 해변 인근 편의점에서 준비해둔 즉석식으로 간단한 아침 배를 채우고, 몸을 일으킨다.

#비조봉. 해발 300m가 조금 안되는 높이의 봉우리이지만 그래도 덕적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오르지 않을 수 없다.

 

비조봉 가는 길에 있는 중화요리집. 서포해변의 대표 명물이었으나 내년 5월까지 휴업. 맛을 보지 못한 게 내심 아쉽다.

덕적도 유일의 호텔인 #골드스타 호텔을 지나 한동안 포장된 마을길을 따라 오르면 대부분 길을 잘못 들어

헤매는 곳에 공사장 처럼 빨간 고깔이 세워져 있다.

빨간 고깔 우측 샛길로 가야만 제대로된 비조봉 방향이다. 안내 푯말이 풀숲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는다.

 

빨간 고깔길을 지나 대나무 터널을 지나면 비로소 산길을 접하게 된다.

초입에 있는 쓰러진 소나무가 대문 처럼 휘어져 있다.

 

이후 잠시도 쉬지 않는 급한 오르막길이 그치지 않고 이어진다.

한참을 급하게 오르면 마침내 안부가 나타나고 거기서 부터는 능선길을 걷게 되는데

우측으로 펼쳐지는 비경에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급경사가 끝나는 능선길의 시작점.

 

능선길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서해의 비경.

마치 남해 다도해를 보는듯 섬들이 많고 그 섬들이 어우러져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주고 받으며

절경을 이룬다.

서해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 너무 아름답다.

정상으로 오르는 마지막 계단. 역시 가파르다.

마지막까지 사정을 보아주지 않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면 정상부에 오르게 되는데

서포리 해안을 출발기점으로 거의 40분이 지났다.

비조봉에는 여느 봉우리에 있는 정상적이 없는 대신 정자가 한 채 쉼터를 겸해서 앉혀져 있다.

정상 계단에서 올려다 본 비조봉 정자. 땀 식혀 쉬어가기 더 없이 좋다.

비조봉의 정상은 동서남북이 막힌 곳이 없이 360도 조망이 가능해서 정말이지 깊은 속까지

시원한 정경을 맛볼 수 있다.

 

 

 

높이에 비해 정상에 올라서면 느낄 수 있는 시원함이 어느 높은 산 못지 않다.

비조봉에서의 시원한 조망을 뒤로하고 이제 짐을 꾸리려 다시 해변으로 복귀.

배 시간에 맞춰 버스 정류장에서 미리 나와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를 한 대라도 놓치게 되면 비싼 택시를 이용하거나 배를 놓치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에

거의 한 시간을 미리 나와서 기다린 후에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버스 시간표가 붙어있지만 실제 운행일정과는 차이가 난다.

 

멀리 진리항을 뒤로하고 배는 제 시간에 항구를 떠난다.

 

 

덕적도를 떠나는 배에서 뿜어내는 거센 물살을 보며, 언젠가 빨리 코로나도 저렇게

신나게 밀어내는 시기가 왔으면 좋겠다는 기약 없는 바램도 가져본다.

진리항을 떠난지 거의 2시간, 머리위로 영종대교가 지나고 있다. 인천이다.

길게 늘어선 인천 앞바다의 영종 대교. 문명과 비문명의 경계를 보는듯한 느낌.

 

1박 2일의 #백패킹. 그러나 마치 몇일 동안 머무르다 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답답한 도심을 떠나 섬의 해변으로 모여든 사람들. 연인, 가족, 친구 또는 혼자인 사람들...

그 마음 깊은 곳에는 한 가지, 그리 다르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조용히 가을스런 #힐링 #여행. 가끔은 떠나도 좋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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