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5

봄 마중을 가다-구례

매년 돌아 오는 봄은, 긴 겨우내 지친 마음의 그 오랜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가장 짧게 스치듯 지나가는 아위운 계절이기도 하다. 그 짧은 계절을 행여 놓칠세라 봄 소식이 들려오는 곳이면, 많은 이들이 새벽길, 먼 길 마다 않고 전국의 어디라도 찾아가는 열정을 펼치기도 하는데 그 시작은 아마도 남녘의 매화가 아닐까. 구례 화엄사의 불당 앞 마당에 홀로 서있는 홍매화의 자태는 전국의 내로라하는 매화중에서도 으뜸이라 할 만큼 아름답고 수려하기에 매년 철마다 찾아오는 사람들도 적지않다. 그 유명세 덕에 가장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는 자리에서 사진 한 장 담기 위해서 새벽같이 찾아오는 극성 사진가들도 부지기수일 터인데, 올해는 나도 그 극성 속에 한 발 보태어 본다. 전날 밤 늦게 출발하여 3시간여를 차를 몰고 가니..

사는 이야기 2023.03.26

영금정의 봄

5월 어느 봄. 지난 겨울 가려했던 영금정의 아침 해를 맞이하기 위해 주섬주섬 짐을 꾸려 길을 나섰다. 마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청명 그 자체. 탁 트인 동해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저 넓은 바다를 통으로 품을 수만 있다면 가슴에 쌓인 삶의 찌꺼기들을 한 번에 씻어 내릴 수 있으련만... 언덕 위의 또다른 영금정 정자 전망대로 자리를 옮겨 보았다. 아래쪽 전망보다는 확연히 다른 전망. 겨울철이라면 일출각이 훨씬 남쪽으로 이동하기에 언덕 위 전망대는 일출을 감상하기 그다지 좋은 위치는 아니지만 봄철이라면 언덕 위 전망도 나쁘지는 않다. 내일 아침 일출은 전망대에서 보기로 하고 영금정과의 첫 만남 자리를 정리한다. 다음날 새벽. 아직은 차가운 새벽 바닷가. 전 날 날씨는 쾌청하고 맑았지만 새..

사는 이야기 2022.06.19

밀양 위양지 - 하얀 기억을 접다

벌써 여러해가 지났다. 아침 이슬 머금은 노란 창포가 유난히 청초했던 봄날 새벽. 아침 맑은 호숫가를 노니는 원앙 한 쌍과 부지런한 아침새의 울음 외엔 내 발자욱 소리만 있었던 그 곳이었다. 하얗게 서린 아침 이슬에 젖은 그 기억을 안고 멀이 떠나 지내던 차에, 또 다시 찾아온 5월. 드문드문 길가의 가로수에 이팝 나무가 솜털같은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 새하얌으로 가득했던 위양지의 기억이 하얗게 솟아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런 일이었다. 기억은, 추억은, 시간이 갈수록 더 깊어만 가는 거라고... 아침 일찍 무작정 나서며 밀야으로 길을 잡는다. 새벽의 기억이 깃든 그 곳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느즈막 해질 무렵. 그래, 이제 이 저녁 노을에 실어 위양지의 기억도 같이 보내자. 예전과 달리, 이제는 많이 알려져 ..

다녀온 길 2022.05.08

주작산 진달래와 일출

봄 내음 물씬 풍기는 달콤한 노래와 함께 한적한 지방 국도를 달려보는 것도 일상 속에서 쉽게 누릴 수 없는 작은 행복 중의 하나일 것이다. 겨우내 움츠리고 쪼그렸던 심신을 추스리고, 조금은 늦게 찾아온 봄 기지개와 함께 활짝 핀 생명의 기운을 만나러 남도길을 향했다. 오랜만에 나서는 밤길. 알 수 없는 설렘과 기대감에 어린 아이 마냥 기분이 한껏 부풀어 오른다. 유독 밤이나 이른 새벽에 나서는 길을 좋아하는 것은 그 특유의 고즈넉함과 스스로 집중할 수 있는 방해받지 않는 시간의 특권 때문일 것이다. ​ 전남 강진에 있는 주작산 자연휴양림. 왠만한 산꾼이라면 다 알만한 주작~덕룡의 멋드러진 암릉 구간 중 작천소령에서 주작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짧은 암릉 구간이 오늘의 목적지. 암릉 사이사이로 분홍빛 물든 진..

다녀온 길 2022.04.12

반곡지, 사진, 그리고....

다녀온 때 : 2021년 4월 17일 ​ 회사 출장길에 기회가 닿아 오랜만에 봄의 신록이 새로운 반곡지를 찾았다. 예전의 한적하던 시골 근교 마을의 작은 저수지는 간 데 없고, 주차장에 차가 빼곡히 들어선 교외의 분주한 데이트 코스로 변해있었다. 아름다운 봄의 정취를 수려한 자연 속에서 감상하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당연한 것이지만 예상외로 분주함에 흠칫 놀래하며 품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들고 나도 봄을 담기에 나선다. 아직은 좀 이른 감이 없잖았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분홍빛 복사꽃들의 고운 자태를 예상하고 갔었지만 역시나 섣부른 기대였나보다...복사꽃은 좀 더 기다려야될 듯하다. 사유지인 이유로, 일반인들이 거의 다니지 않던 복사나무들 지나 건너편 언덕에 산책로가 생겨 몇몇 열성 사진 동호인들이나 들어..

사는 이야기 2021.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