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온 길 46

승봉도를 찾아서 1박 2일 - 2

텐트 앞으로 펼쳐진 멋진 노을과 함께 보낸 낭만적인 밤의 여운을 그대로 간칙한 채 새로운 아침이 시작되었다. 섬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무척이나 색다르다. 기계적인 알람 소리 대신 멀리서 들려오는 낮은 주파수의 시원한 파도 소리와 번잡스럽지 않은 경쾌한 새소리에 정신을 드는 것 자체가 경이로움이요 행복이다. 더불어 처음 눈을 떠 맞이하는 풍경이 꽉 막힌 콘크리트 벽이 아닌 망망대해를 마주한 푸른 바다라면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새벽 내내 물이 빠지고 훤히 드러난 해수욕장 앞 바닷가엔 아침 일찍부터 해루질에 몰려든 사람들로 분주하다. 인근 민박집에 묵었던 관광객들이 가족 단위로 삼삼오오 아이들의 비명 소리와 함께 아침의 자연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 덩달아 행복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런 아침이 있는 곳. ..

다녀온 길 2023.11.12

승봉도를 찾아서 1박2일 - 1

이른 아침 차를 몰고 나선다.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 승봉도로 가는 배 편은 9시 30분. 평일 출근 시간을 감안해서 조금 서둘렀던 탓에 7시 30분에 도착하였다. 가벼운 아침 식사는 물론 따끈한 모닝 커피까지 충분히 즐길 시간적 여유가 생긴 셈이다. 승봉도로 가는 배는 인천에서도 탈 수 있지만 인천에서 출발하는 배는 대부도(방아머리)에서 출발하는 것에 비해 거리도 멀고 중간에 자월도를 경유해서 가기에 자칫 자월도를 승봉도로 착각하고 내리는 경우가 있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상대적으로 배의 탑승 시간이 여유가 있고 승전 거리도 짧은 대부도를 택한 이유다. 단,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의 경우 주차 공간이 협소하고 전반적으로 규모가 작아서 주말일 경우 매우 혼잡하기에 가급적 평일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주차..

다녀온 길 2023.11.12

가고싶은 섬 굴업도-2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서쪽 바다 너머로 사라지는 섬의 태양을 바라보며, 벼랑끝 홀로 선 나뭇가지에 마음을 기대어 하루에게 이별을 고한다. 섬의 하루는 마지막까지 하나가 하나를 보낸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중략) 어느 가을 저녁. 시인 윤동주가 노래했던 하늘과 별을 향한 서사의 첫 구절. 바다 한 가운데의 외딴 섬의 봄 하늘 아래서, 아름답도록 애절했던 그 한 구절을 되새겨 본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중략... 차마 부르지 못했던 그 이름들과 지나간 시간 속의 기억들. 시인 윤동주가 노래했던 그 하늘 과 그 별은 분명 지금의 그것들이 아닐진데, 지금 그 구절들이 생각나는 것은 무..

다녀온 길 2023.04.22

가고싶은 섬 굴업도-1

그 섬에 가고 싶다... 굴업도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백패킹 좀 한다는 사람들의 성지가 되어 있었다. 주말이면 들어가는 배 표 구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조용한 섬 마을에 모여드는데, 아직은 바다가 조용한 봄 날, 직장인으로서는 소중한 휴가를 주말 앞에다 두고 우여곡절 끝에 굴업도를 위한 배낭을 꾸렸다. 애초에 같이 가기로 한 일행들은 개인 사정으로 빠지고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나 홀로 길을 나선다. 3월의 마지막날, 덕적도 행 첫 배를 타기 위해 금요일 새벽 일찍 서둘러 인천 연안부두에 도착하니 부두의 아침은 벌써 분주하게 깨어 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가까운 식당에 들러 아침 해장국으로 배를 채운다. 굴업도로 들어가는 배는 직항편이 없기에 덕적도 진리항으로 가서 다시 굴업도행 배를 갈아..

다녀온 길 2023.04.15

얼음진 한탄강 물윗길을 걸으며..

전국 지자체마다 이런 저런 걷기 좋은 길들이 많지만, 물 위를 걸어가는 길은 아마도 전국에 단 하나가 아닐까? 강원도 철원군이 몇 해 전부터 겨울철에만 꽁꽁 언 한탄강 위에 놓아 온 한탄강 물윗길. 한탄강 주변은 그 독특한 화산형 지형 덕에 유네스코에서도 공식 인정한 세계 지질 공원에 당당히 이름을 올려 놓은 곳.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는 화산형 암석인 현무암이 즐비하게 놓여있는데 제주의 경우 유명한 현무암 명소는 대부분 멀리서 망원경으로 보거나 사진을 찍어 확대해서 보는 것이지만, 한탄강 물윗길을 걷다 보면 바로 어깨 옆에 서있는 수만년 전의 용암의 흔적을 볼 수 있다. 2월 초순의 날씨는 아직은 쌀쌀하지만 구석구석에 조만간 다가올 따스한 봄날의 작은 흔적들이 자리잡아 초봄의 청량감을 그대로 느낄 수 ..

다녀온 길 2023.02.19

무등산 겨울 산행

무등산, 해발 1100미터 고지의 한반도 남쪽의 대표적인 명산. 무등산을 유명한 이유야 여러가지이겠지만, 그 중에서도 정상부에 발달한 주상절리가 대표적인 상징중 하나일 것이다. 무등산이 자랑하는 명품 경관인 3대 주상절리. 서석대, 입석대, 그리고 광석대. 제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주상절리이지만 한반도 내륙에서는 볼 수 있는 곳이 흔치 않고, 특히 1천 미터가 넘는 고지에서 높은 산정 풍경과 함께 감상할 수 잇는 주상절리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렇기에 추운 겨울이면 날씨 조건에 따라 검은 주상절리에 피어난 하얀 상고대를 눈꽃처럼 감상할 수 있는 진귀한 기회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최근 들어 갑자기 낮아진 기온과 연일 내린 눈 소식에 칠흑같은 주상절리에 새하얀 수정같은 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이..

다녀온 길 2023.01.29

봉정암 사리탑에서..

몇해 전부터 가을이면 제일 먼저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의 수렴동 계곡을 따라 펼쳐진 긴 단풍길을 걷는 산행 코스를 계획했었지만, 어쩐 일인지 매번 뜻하지 않게 무산되기가 일쑤였다. 코로나, 날씨, 갑작스런 스케줄 등등...세번에 걸친 좌절 끝에 올해엔 무슨 일이 있어도 가리라 마음 먹고 벌써 여러달 전부터 준비에 들었다. 새벽 6시에 출발하는 백담행 첫 버스를 타려면 버스 터미널 근처에서 1박을 미리 하고 새벽 일찍 짐을 챙겨 나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버스 터미널 인근의 캠핑장의 방갈로를 예약한다. 10월의 마지막 주말, 토요일 미리 가서 숙박을 하고 다음 날 새벽 일찍 짐을 챙겨 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강원도의 가을 새벽은 제법 쌀쌀한 날씨였고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각. 그럼에도 백담사행 첫..

다녀온 길 2022.11.03

곰배령, 천상의 화원에서

곰배령. 강원도 양양군에서 솟아오른 점봉산이 남으로 뻗쳐 작은 점봉산에 이르면 그 아래로 해발 1,100m 고지에 평평한 평원이 펼쳐지는데, 이 곳이 곰배령이다. 곰이 배를 내밀고 누워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곰배령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모양도 그렇고 이름의 유래가 동화스러워 귀엽고 이쁘기만 하다. 곰배령은 행정구역 상으로는 강원도 인제군에 속하고, 귀둔리와 진동리 두 곳의 들머리를 통하여 오를 수 있는데 자연 생태 환경 보존을 위해 매일 정해진 인원 수에 한해서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기에 두 군데 모두 사전 예약이 필수다. 예약제로 인한 세심한 관리 덕분인지 이 곳의 생태 환경은 원시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잘 보존된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그대로 느끼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다..

다녀온 길 2022.05.29

밀양 위양지 - 하얀 기억을 접다

벌써 여러해가 지났다. 아침 이슬 머금은 노란 창포가 유난히 청초했던 봄날 새벽. 아침 맑은 호숫가를 노니는 원앙 한 쌍과 부지런한 아침새의 울음 외엔 내 발자욱 소리만 있었던 그 곳이었다. 하얗게 서린 아침 이슬에 젖은 그 기억을 안고 멀이 떠나 지내던 차에, 또 다시 찾아온 5월. 드문드문 길가의 가로수에 이팝 나무가 솜털같은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 새하얌으로 가득했던 위양지의 기억이 하얗게 솟아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런 일이었다. 기억은, 추억은, 시간이 갈수록 더 깊어만 가는 거라고... 아침 일찍 무작정 나서며 밀야으로 길을 잡는다. 새벽의 기억이 깃든 그 곳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느즈막 해질 무렵. 그래, 이제 이 저녁 노을에 실어 위양지의 기억도 같이 보내자. 예전과 달리, 이제는 많이 알려져 ..

다녀온 길 2022.05.08

봄 향기 속 서울 나들이

볕 좋은 봄날이다. 창의문 앞 최규식 경무관 동상 앞 10시. 일행들이 하나 둘씩 모여든다. 전원 도착이 확인되고, 이내 진행자의 목소리가 일정의 시작을 알린다. 우리 현대사의 아픈 상처중의 하나인 1.21 사태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있었고 이내 길 건너편 윤동주 문학관으로 이동하여 내부 전시물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진다. 윤동주 문학관은 예전 수도 가압장이었던 시설을 2012년 용도 폐기하여 리모델링한 곳. 나는 예전 한양 순성길 답사시에 들렀었기에 내부에 들어가지 않고 주변의 풍경을 담는다. 낮은 담장 뒤로 보이는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한 무리의 고급 주택들. 안내하시는 분의 말에 의하면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생전에 그 곳에 집을 두고 계동 사옥까지 걸어다녔던 곳이란다. 이후 문학관 뒤로 이어..

다녀온 길 2022.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