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온 길

지리산 둘레길 17구간(난동~오미)

나무 향기 2019. 11. 2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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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5월의 푸르름을 벗삼아 산청을 돌아 성심원을 다녀온 후,

6월엔 곧바로 7번째 구간을 가지 않고 서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017년 6월. 오미~난동의 구례구간을 1박2일에 걸쳐 걷기로 하고

길을 나선다.

 

서시천을 따라 걷는 구례 구간이 길좋고 아름답기로 평이 나있었던 덕이다.

구례 구간은, 오미마을과 난동마을을 잇는 구간으로 서시천을 따라 걷는 길과

지리산 산자락을 걷는 두 구간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먼저 서시천을 따라 봄날의 여유를 느낀 후 숲길을 걷기로 하고 난동마을에서 출발. 오미마을에서 1박하는 원점회귀로 코스를 잡는다.

 

시작은 온당리 난동마을, 마을까지 오가는 버스편이 애매해서 부득이 마을에

차를 세워두고 1박2일의 여정을 시작한다.

난동갈림길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붉은색 원으로 표시된 부분에 마을 공동 주차장이 넓게 조성되어 있다. 차를 세워두고 다시 아래로 내려와 지도상에 분홍빛으로 표시된 둘레길을 따라 온동마을 방향으로 걷는다.

마을 주차장이 엄청 넓게 조성되어 있는데 차는 거의 없다.

주차요금은..? 당연 무료다. ㅎ

아침에 분주한 산골 마을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유람하듯 길을 내려온다.

마을 곳곳에 순박한 벽화가 둘러져 있다. 왠지 어린 소녀의 맑은 미소가 생각나는 그런 마을길이다.
요즘 농촌은 일손이 귀하다. 아낙들도 장갑을 끼고 논일, 밭일에 나서는 모습이 드물지 않다.
모내기에 작물 파종에 한참 바쁠 시기엔 어르신들의 수다로 가득찰 마을 정자도 한산하다. 
줄맞춰 서있는 어린 모들이 앙증맞기도 하다.

한참 분주한 마을 광경을 지나치자니, 팔자 좋게 혼자 유람하듯

길을 걷고 있는 상황이 한 편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누군가의 생업이 또 다른 누군가의 눈에는 한갖 감상용 정경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현실이다.

혹여, 이 시기에 농촌 마을을 지나게 되거든, 바쁜 농심을 화나게 하거나

상처받지 않게 가벼운 언행은 삼가하고 그들의 땀 어린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나길 바란다.

분주한 봄날의 농촌 들판

 

난동 마을에서 내려와 구불구불 이어지는 국도길을 가다보면

검은 대리석에 적어놓은 마을의 유래와 함께 온동 마을이 나타난다.

예전 오래된 시절에 이 마을에 있었던 신비한 우물과 마을의 유래를 적어 놓았다. 예나 지금이나 관심과 치료가 필요한 이웃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해서 약간은 씁쓸한 마음이 든다.

 

신비의 효능을 가진 우물에 대한 전설이 내려오는 마을이다. 

나병 환자들을 못오게 하는 대신 환자와 마을이 함께 공존 번영할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 것 같은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혼자 걷지만 혼자이지 않게 해주는 정겨운 길벗. 내가 걷는 시계반대 방향길은 검은색 화살표 방향이다.

 

간혹 나타나는 풍경이지만, 봄에 보는 황금빛 들녘에서도 묘한 정서가 느껴진다.

그 옛날 그토록 어렵고 힘겨웠던 보릿고개가 아닌가...

누런 봄 들판을 보며 얼마나 많은 우리 할아버지들이 애닳아 했을까.?

지금 보면 격세지감이다.

온통 어린 초록잎의 들판에 보리 이삭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보릿고개의 마지막을 알려주고 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수놓는 하안 밤꽃이 유난이 이뻐 보인다. 구례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밤나무가 유난히 많다

크게 온동 저수지를 지나면 이제부턴 서시천을 따라 걷는 평지 구간이 나온다.

구만마을은 우리밀 재배로 유명하다. 농촌체험관에서 우리밀 관련 소식과 여러가지 체험을 할 수 있다. 잠시 쉬어도 갈겸 들러봄직하다.

서시천 제방길을 따라 걷다보면 그 시원한 강바람과 길옆 나무 그늘의 시원함에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잊을 수 있을 것 같은 행복감이 밀려든다.

단언컨데, 이 구간을 봄에 걷게 된다면 둘레길 구간 중에 최고를 걷게 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서시천을 따라 시원하게 이어지는 둘레길. 시멘트 포장길이지만 아름다운 풍경에 지질줄 모르고 걷는다. 
지리산 둘레길 구례 구간은 이충무공 백의종군로와 많이 겹친다. 충무공의 뜻도 함께 되새기며 걸을 수 있다.
강가의 이름모를 태공의 한가로운 모습에 신선이 따로 없어 보인다. 당장이라도 배낭을 벗어 던지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싶어진다.
강변의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누구라도 시 한 수 정도는 읊을 정도로 경치는 빼어나다.

강가의 경치에 취해 걷다 보니 어느덧 구례읍이다.

아침 내내 걸었더니 허기가 진다. 둘레길 구례센터에 들러

둘레길 관련 소식도 듣고 인근에 식사할 만한 식당도 추천 받아 나선다.

6월의 따가운 봄햇살을 잠시 피해도 갈겸 들러서 목을 축인다.

 

구례읍이 바로 멀지 않은 곳이기에 공설 운동장 등

시민 휴식시설이 많이 조성되어 있었다.

간단한 점심을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선다.

구례센터에서 오미마을로 가는 길에 펼처진 풍경. 정말 아름답다.

길은 너무 아름답다.

충무공께서 백의종군하시면서 보았을 이 산천 이 강토가 아닌가..

이토록 아름다운 우리 산천을 보면서 무너진 나라의 중심을

바로 잡을 구국의 충혼을 다시 한 번 일으켜 세우셨으리라.

 

서시천을 건너 용호정 계곡을 지나 오늘의 목적지인 오미마을로 향한다.

용호정 계곡으로 가는 길은 데크로 깔끔하게 정비되 었다. 밤나무가 유난히 많은 고장이다.

용호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정자는 전국 곳곳에 여러 곳이 있지만,

대부분 아름다운 경치를 배경으로 풍류를 즐기기 위한 곳이었다면,

구례의 용호정은 구한말 경술국치의 설움과 울분을 달래고자 지역의

유림들이 일제의 눈을 피해 모임을 가졌던 장소로서 의미가 많이 다르다.

용호정. 경술국치의 울분을 달래고자 지역 유림들이 회합을 위해 지은 정자이다. 
백의종군로 뒤로 뻗은 농로를 따라 가면 오늘의 목적지인 오미마을이다.

드디어 오미마을이다. 둘레길 안내 표지판이 선명하다. ㅎ

아울러 옆에 같이 서있는 "남도주막1호점"이라는 안내판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남도주막 1호점은 주막이 아니고 그냥 일반 민박과

찻집을 겸한 간단한 가게였다. 안내판은 그 전에 설치되었던

것을 치우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지금쯤은 철거되고 없을 것이겠지만...

오미마을 표지판, 나를 실망시켰던 남도주막 1호점 안내판도 같이 서있다.

먼저 오늘 숙박을 위해 한옥 민박집을 구하는데 남도 주막1호점은

그냥 패스...이 후 두세집 거쳐 운조루 바로 우측 한옥 민박집을 발견,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했더니 마침 빈 방이 있단다.

작은 자갈돌로 덮인 앞마당에 지리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실개천이 흐르는

정갈하고 깔끔한 한옥민박집. 따끈한 방에 몸을 누이니 하룻동안 쌓인

피로가 금새 몰려오지만 실개천 소리와 맑은 공기에 금새 기운을 차린다.

(이 민박집은 그 이듬해 둘레길의 마무리를 위해 다시 찾게 된다.)

민박집 전경. 자갈돌 마당에 작은 꽃밭으로 너무 정갈하고 깔끔한 인상이다
나리꽃이 정겹게 피어있고 앞마당에 맑은 개천이 흐른다.

 

6월...

여름으로 넘어가는 봄의 후반부에 걸었던 서시천의 

둘레길은, 지리산 자락의 숲을 벗어나 탁 트인 넓은 벌판과

강줄기를 바라보며 걷는 힐링 구간이며, 이충무공의 백의종군길도

함께하는 애국의 길이기도 하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이 아름다운 길을 마음껏 걸을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이 땅의 후손으로 나고 자란 크나큰 축복이 아닌가 되돌아

생각해본다.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의 후손들이 마음껏 감사하고 즐기며 걸을 수

있도록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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