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온 길

지리산 둘레길 18구간(오미-방광-난동)

나무 향기 2019. 12. 14.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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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서시천을 따라 펼쳐진 6월의 상쾌함을 한껏 누리며 마음의 피로를 풀고

오미 마을의 한옥 민박에서의 기분 좋은 밤이 지나고, 새로운 여정을 위하여

다시 새벽 걸음을 나선다.

 

오미 마을에는 운조루라는 유명한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의 고택이 있는데

최근 둘레길과 더불어 입소문이 퍼졌는지 아이들을 동반하여 찾는 이가 많다고 한다.

전형적인 남쪽 지역의 품자 형태로 지어진 99간의 대저택(현재는 73간만 있음)이고,

자리한 집터가 풍수학에서 말하는 이른 바, 금환낙지의 명당터이기도 한데

그것보다, 인근의 배고픈 백성들이 언제든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의 쌀을 퍼갈 수

있도록 나무로 만들어 놓은 목독(木櫝)이 가진 자의 도리를 몸소 일러주고 있기에

화려하고 거창한 볼거리는 아니지만 훈훈한 교훈과 함께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한 번쯤은 들러보면 좋을듯 하다.  여름철에는 연못에 연꽃이 가득하겠다.

 

구례 운조루 고택

이 집은 조선 영조 52년 (1776년)에 당시 삼수 부사를 지낸 류이주(柳爾胄)가 세운 것으로 99간 (현존73간)의 대규모 주택으로서 조선시대 선비의 품격을 상징하는 품자형(品

100.daum.net

민박집 아주머니의 손 정성이 깃든 아침밥으로 기운을 채우고 길을 나선다.

오미마을에서 막 벗어날 즈음 왠지 아쉬운 마음에 잠시 뒤를 돌아다보니 멀리

산등성이 너머로 해가 떠오르고 있다. 

들판에서 맞이하는 아침에는 언제나 생명력이 가득차있음을 느낀다. 내가 새벽길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미 저수지에 비친 아침 하늘의 반영이 아름답다. 멀리 제방 뒤쪽으로 운조루 유물 전시관이 보인다.

오늘 여정은 지리산 둘레길 18번째 구간인 오미-방광을 조금 더 지나 어제

출발지였던 난동마을까지 약 20km 거리이다.

 

오미-방광

오미 - 방광 12.3km 5시간 오미 - 방광 : 중 방광 - 오미 : 중 구간별 경유지 오미마을(운조루) – 용두갈림길(1.1km) – 상사마을(1.6km) – 지리산탐방안내소(5km) – 수한마을(3.2km) – 방광마을(1.4km)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오미마을과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방광마을을 잇는 12.3km의 지리산둘레길. 오미-방광 구간은 전통마을의 흔적이

jirisantrail.kr

 

오미 마을을 벗어나면 바로 옆이 하사 마을이다 잘 정리된 하사 마을 들판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하사 마을의 소담한 아침 풍경. 작은 마을에 작은 승용차가 어쩐지 정겹게 느껴진다.

6월의 들판은 한참 새로운 모내기 작업으로 바쁜 시기이다.

이른 아침부터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들판으로 나가서인지 마을은 텅 비다 시피

한적하였고 가끔 오가는 차들만 인적을 대신하였다.

여행길이란 것이 길만 걷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오가는 사람들과의 우연한 인연 속에서

삶을 나누고 정을 느끼면서 내면을 채우는 것이 나름의 의미일진데,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런 농번기에 농촌 마을로의 여행은 어쩌면 조금은 허튼 걸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린 모에 맺힌 아침 이슬 방울이다. 귀엽고 앙증맞지만 한 편으로는 감사한 마음도 든다.
하사 마을 들판의 정자 쉼터. 도심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멋스러움과 여유로움이다.

마을에는 효자문 하나가 잘 보존되어 있다.

요즘 세대에서는 왠지 낯설게도 느껴지는 옛 덕목중 하나. 

어쩌면 묵혀진 책에서나 나오는 그런 오래된 가치관으로 취급되어 이제는 쉽게 들어볼 수 조차

없이 되어버린...

지나간 시절의 가치관이나 철학적 개념이라면 긍정 보단 부정의 시각으로 보는 이가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사라져서는 안될 소중한 것들이 있기에 다시 한 번 짚어보고

잊지 않았으면 한다.

이규익이라는 효차에게 내려진 려(閭). 일종의 효자문이다.

상사 마을을 지나 이제 황전 마을로 넘어가는 길은 숲길로 들어선 고갯길을 넘어가게 되는데

고갯길에서 좌측으로 보면 앞서 지나온 상사 마을의 넓은 들판과 함께 멀리 강 건너 구례읍까지

거침 없이 한 눈에 볼 수 있다. 

시원하게 펼쳐진 넓은 들판과 강건너 구례읍까지 깨끗하게 보인다. 가슴이 탁 트이는 순간이다.

둘레길을 혼자 걷다보면 가끔 동행자가 아쉬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주는 고마운 친구가 있는데, 둘레길 표지목이다.

마치 오래된 마을의 장승처럼 두팔을 나누어 들고 가야할 방향을 친절히 알려주는, 더없이

고마운 친구이기에 한 번도 그냥 지나쳐온 적이 없던 것 같다. 

볼 때마다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두거나 눈 웃음이라도 한 번 건네주고 정을 나누었던 친구.

지금도 밤이나 낮이나 계절을 묻지않고 그 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을까..반갑게 반겨주는 둘레길 표지목. 시계 방향으로 가는 길이기에 빨간 화살표 방향으로 가야한다.

황전마을을 지나 구례 야생화 타운 인근에 있는 월등파크호텔까지는 일반 상가촌을 지나게 되고

월등파크호텔 부터는 다시 산길로 접어들게 된다.

만들어진 수로를 따라 포장된 길을 나무 그늘 사이로 걷는다.

수로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방광마을이 지척이다. 2km.

초기에 세워진 둘레길 표지목은 팔이 없이 기둥에 화살표만 새겨져 있다.

 

방광 마을로 가기 전 수한 마을의 보호수. 마을의 모든 역사를 품고도 남을 것 같다.

방광 마을이다.

이름이 좀 유별나기도 하지만 이 마을에 있는 세가지 보물도 나름 이름값이 있다.

소원 바위, 당산 나무, 아버지 감나무..

가야할 일정이 빡빡해서 일일이 찾아보지는 못하였으나 마을 이름 만큼이나 흥미로왔기에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온 것이 살짝 아쉽기도 하다.

방광마을. 최근에 세워진 표지목이 이쁘게 단장하고 반겨준다.

 

방광마을의 들판도 한참 바쁘다. 수확을 앞두고 누렇게 익은 보리가 한층 멋을 더한다.

방광 마을을 뒤로하고 이제 난동마을로 향한다.

푸른 하늘에 양떼와 큰 새 한 마리가 날아가는 듯 홀로 걷는 길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물감을 풀어놓은 듯 파랗고 맑은 하늘과 주변의 새울음, 바람소리에 취해 정신 없이 걷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혼자만의 길흥에 취해 걷다보니 그만 길을 놓치고 말았다.

둘레길은 사전에 아무리 지도상으로 길을 익히고 가더라도 막상 실제 가보면 처음가는 곳이다보니

항상 긴가민가한 곳이 나타나기 마련이므로 중간중간 지도 앱을 활용해서 길을 잘못가지 않도록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푸른색 원 안의 구간을 아무 생각없이 해매고 다녔다..ㅠㅠ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그리 늦지 않게 그리고 힘든 산길 구간이 아니라 평지 논두렁 구간이었기에 

쉽게 원위치할 수 있었다. 아니었다면...큰 낭패를 볼 수도 있었던 순간이다. 감사하다.

 

대전리를 지나 호젓한 숲 오솔길을 걷다보면 주변에서 보지 못했던 현대식 주택들로

구성된 마을이 나타난다.

구례 예술인 마을이다.

예술인 마을 초입의 둘레길 표지판. 조각 작품 속에 서 있으니 느낌이 좀 다르다.

 

각 예술분야별로 나름의 구획을 지어 아뜰리에 겸 갤러리로 활용되고 있다.

 

길가에 펴있는 들꽃들이 고급 정원을 방불케한다.

지리산 깊은 자락에 이런 현대식 건축물들이 무리지어 있다는 것이 어쩌면 생소하기도 하지만,

또 달리 생각해 보면 지리산이라는 크고 맑은 자연 속에서야 말로 예술적 감흥이 절로 일어나는

최적의 장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자연과 현대 문명이 서로 적절하게 어우러져 상처주지 않고 위해줄 수 있다면 그만큼 좋은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깔끔하고 단정하게 조성된 예술인 마을.

예술인 마을의 눈길 가는 곳 마다 조금씩 구경하면서 얼마를 더 갔을까?

그리 오래지 않아 하루 전, 차를 세워 두었던 난동 마을의 공용 주차장에 다다랐다.

생소한 산골 마을에서 혼자 밤을 지새우고 아무런 상처 없이 고이 기다려준 애마가 대견스럽기도 하다.

난동에서 서시천을 따라 오미 마을로, 오미에서 다시 지리산 자락을 지나 난동 마을까지.

거의 40 km 여정을 무사히 마쳤다.

둘레길과 거의 겹치다시피 한 이 충무공 백의종군길을 같이하며, 운조루 목독에 새겨진 "他人能解" 의

깊은 의미까지. 이번 둘레길 여정은 많은 생각과 느낌이 함께한 길이었다.

푸른 6월의 하늘 아래서, 자칫 잊기 쉬웠던 소중한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었던

너무나 고마운 시간들.

 

6월의 하늘은 그렇기에 언제나 더 푸르게 느껴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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