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온 길

겨울 자작나무 숲에서

나무 향기 2022. 2. 19. 14:06
728x90

2022년 2월 16일 9시 22분.

언제부터인가 눈덮인 새하얀 자작나무숲을 걸으며 그 순백의 모습을 담고싶다는 간절함이

내 머리속을 수시로 드나들었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으로 마음만 졸이다가 입춘이 지난

겨울의 막바지에 강원지역 대설 주의보가 일기예보에 뜨기에 다른 생각은 다 접어놓고

월차를 제출하고 아침일찍 집을 나선다.

자작나무숲 출입은 9시부터이고 그 시각에 맞추어 도착.

주중 평일 아침이기에 주차장은 텅 비어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영하 10도의 추운 날씨지만

그 와중에 먼저 와있는 차량들이 드문드문...주차장을 먼저 차지하고 있었다.

 

아...벌써 나보다 먼저 올라간 사람들이 저렇게나...

이 추운 날씨에 참, 부지런들도 하다.

새하얗게 쌓인 눈길 위에 첫 발자욱을 남기는 낭만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이 놈의 바이러스는 어딜 가나...여튼 방역 체크, 인원 수, 이름 적고 입장.

방영체크 부스가 설치되어 출입객 전원 출입사항을 기재하게 되어있다.

 

자작나무 숲길은 탐방 코스가 여럿 있지만, 겨울철엔 각종 사고 예방을 위해

제일 큰 도로만 남기고 나머지는 폐쇄.

다양한 코스를 볼 수 없는 건 아쉽지만, 어느 길로 갈까...코스 선택에 대한 고민할

필요없이 곧장 직진. 굿~~^^😆

앞서 올라간 사람들의 자취들이 굽어진 임도길을 따라 가지런히 놓여있다.

두 사람이 어깨를 맞대고 나란히 걸어간듯이 가지런히 찍혀있는 발자욱. 다정한 연인...

소복히 쌓인 눈 위에 첫 발자국, 왠만한 감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져보는

낭만이겠지만 그게 참 쉽진 않다.

그래도 어지럽지 않게 가지런한 모습으로 찍힌 발자국이 나름 분위기는 있어 보인다

 

요래 저래 걷다보니 이제 남은 거리는 1km남짓...

낮은 기온이지만, 추운 날씨에 대비해 두껍게 껴입은 데다 오르막 길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슬쩍 땀이 난다.

군데군데 안내표지판이 가지런히 정비되어 있어 누구라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쏟아지는 아침햇살 사이로, 애초에 보고자했던 아이스크림 같은 순백의 눈을

길 한 옆에서 만났다.

누구의 흔적도 닿지 않은 궁극의 순수함이 아침 햇살을 받아 더 하얗게 느껴지고,

그 작은 반짝임에 한참을 설레는 눈빛으로 어루만지다 나머지 발길을 재촉한다.

나무 그림자 사이로 빛나는 눈의 결정에 반사된 빛이 마치 보석을 겹쳐놓은듯 눈이 부시다.

 

얼마를 더 갔을까?

길옆으로 드문드문 펼쳐진 자작나무 군락을 감상하며 설국의 정취를 만끽하던 중에..

길 좌측으로 본격 자작나무 숲으로 통하는 길이 열린다.

마치 동화속 겨울 마법의 숲으로 들어가는 통로인듯,

살짝 굽어진 계단길이 묘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며 손짓을 하고...

그래....내가 널 보기 위해 새벽잠 설쳐가며 먼길 달려왔음이야~~

 

곧게 뻗어있는 기상이 매난국죽에 비해 손색이 없다

 

입구의 계단길을 내려서면, 전체적인 숲을 내려다보며 살필 수 있는 전망대가 놓여있고

계단길에서 바로 이어지는 가까운 곳에서 숲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전망대 아래쪽에서 바라본 전망대 모습.

 

전망대 바로 옆으로 나름 유명세를 탄 통나무 오두막이 연신 탐방객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사진 명소 앞에선 추위도 잊은 채 기념 샷을 담는 줄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른 아침이기에 가능했던 비어있는 오두막 샷. 주말이면 아마도 사진 한 장 찍기위해 제법 기다려야할 듯.

 

군데군데 쉼터 역할을 할 수있는 통나무 벤치가 눈을 소복이 덮고 자리잡고 누워있다.

녹음이 우거진 계절에는 삼삼오오 짝을 이룬 커플들의 정다운 장소가 될 것 같다.

있는듯 없는듯 낮게 깔리듯 누워있는 통나무 벤치. 눈덮인 모습도 정겹다

이제 막 하루를 여는 아침 햇살은 훤칠한 나뭇줄기 사이로 연신 보석빛을 쏟아내고,

파란 하늘가엔 늘씬한 자작나무의 키맞춤 놀이가 한창이다.ㅋㅋ

유난히 맑은 하늘이 하얀 겨울의 푸른 청량감을 더해준다
 
사진 찍느라 잠시 한 쪽 귀에 걸쳤던 마스크가 겨울 강원도의 산 바람에 여지없이 얼어붙어버렸다.
역시...

안경을 쓴 상태에서 마스크를 쓰고 사진을 찍다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입김으로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게되는 현상이 어김없이 발생한다. 어렵다...ㅠㅠ

거의 한 시간 정도 이리 찍고 저리 찍고 숲속을 헤매다 보니 손도 시리고, 배도 고프다.

자작나무 숲에는 음식물을 반입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보니 아침내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마냥 뛰어다닌 셈이다.

어느새 하나둘씩 사람들이 불어나서 서서히 번잡스러워지기 시작한다.

평화로운 숲속의 정취는 여기서 그만.

돌아가기로 하고, 올라왔던 임도가 아닌 숲 아랫쪽으로 나있는 숲속 오솔길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내려가는 길의 오솔길도 자작나무 사이로 걷는 재미가 솔솔하며 나름 운치가 있다.

 

아이젠 사이로 들리는 뽀득뽀득 눈밟는 소리에 흥이 나서 내려오다보니 주차장은 벌써 빼곡히 들어차있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 조금 이른 점심을 먹고 숲을 구경하러 올라갔나 보다.

앞서 내려오는 길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고 있었지만 주차장이 이렇게나 빼곡히 들어찼을 줄이야...

남들보다 조금 일찍 나서는 것은 역시 나만의 오붓한 시간을 즐기기 위한 당연한 선택이다.

유난히 눈이 귀했던 이번 겨울, 봄이 오는 길목에서 가느다란 미련으로 다녀온 이 겨울의 마지막 설국.

이제 또 한 해를 기다리면 널 다시 볼 수 있을까?

묘한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핸들을 잡는다.

반응형

'다녀온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 향기 속 서울 나들이  (0) 2022.04.17
주작산 진달래와 일출  (0) 2022.04.12
바래봉. 2021년을 보내며 상고대를 만나다.  (0) 2022.01.15
철원 가을 여행  (0) 2021.10.10
감악산에서 임꺽정을 만나다  (0) 2021.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