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온 길

주작산 진달래와 일출

나무 향기 2022. 4. 12.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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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내음 물씬 풍기는 달콤한 노래와 함께 한적한 지방 국도를 달려보는 것도

일상 속에서 쉽게 누릴 수 없는 작은 행복 중의 하나일 것이다.

겨우내 움츠리고 쪼그렸던 심신을 추스리고, 조금은 늦게 찾아온 봄 기지개와 함께

활짝 핀 생명의 기운을 만나러 남도길을 향했다.

오랜만에 나서는 밤길.

알 수 없는 설렘과 기대감에 어린 아이 마냥 기분이 한껏 부풀어 오른다.

유독 밤이나 이른 새벽에 나서는 길을 좋아하는 것은 그 특유의 고즈넉함과 스스로

집중할 수 있는 방해받지 않는 시간의 특권 때문일 것이다.

전남 강진에 있는 주작산 자연휴양림.

왠만한 산꾼이라면 다 알만한 주작~덕룡의 멋드러진 암릉 구간 중 작천소령에서 주작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짧은 암릉 구간이 오늘의 목적지.

화살표 부분이 가장 인기가 많은 사진 포인트

 

암릉 사이사이로 분홍빛 물든 진달래가 봉긋봉긋 피어 오른 모습이 일품인데다 이를 전경 삼아

맑은 날 일출을 담을 수 있다면 오랜 시간 동안 쉬이 잊히지 않는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기에,

날씨가 좋은 봄날이면 일출을 담고자 전국의 많은 사진 동호인들이 줄을 지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밤 10시에 집을 나서서 휴양림에 도착하니 새벽 3시가 조금 못되었다.

작천소령 주차장은 이미 만차여서 아랫쪽 휴양림 숙소까지 다시 내려가 차를 대고 다시 걸어

오기로 한다.

길이 워낙 좁아 차를 돌릴 수 없어 후진으로 내려오는데 제법 긴장감이 돈다.

이래저래 차를 대고 장비를 챙겨 메고 컴컴한 밤길을 걷기 시작.

조명은 하나 없지만 워낙 별빛이 밝다.

주 능선에 올라서니 여기저기서 이미 포인트를 잡고 은하수 담기에 여념이 없다.

덩달아 삼각대를 펴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은하수 보다는 벌써부터 치열해지는 자리 다툼에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자리를 잡는 것이 우선이기에 험한 암릉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기에

정신이 없다.

겨우 능선 끝 자락에 자리를 잡고 장비를 푼다.

아직은 약간 쌀쌀한 새벽 바람에 거의 3시간을 기다리니 서서히 동녘이 밝아온다.

멀리 다도해 바다에 엷게 핀 운무가 분위기에 한몫을 해준다

 

어슴푸레 푸른 새벽 하늘 빛이 사라지고 본격적으로 일출이 시작되는 시간.

주홍색으로 물든 하늘에 가슴이 날아 오른다.

명불허전이다...

네시간 남짓 밤길을 홀로 달려온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분홍 진달래 뒤로 펼쳐진 조각같은 암릉을 앞에 거느리고 사열을 하듯 위풍당당한 모습을 드러낸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 본다.

근육질의 바위 더미가 호위 무사처럼 벌려서서 일출의 장관을 한층 더 멋지게 돋보여준다.

이 황홀한 순간을 조금이나마 더 오래 느낄 수 있도록 이대로 시간이 잠시만 멈추어 준다면 ...

하긴, 언제 자연이 기다려준 적이 있던가. 자연은 그저 순간 순간을 지나갈뿐인 것을. ^^

길지 않은 10분 남짓의 멋진 일출을 마무리하고 산 아래로 눈을 돌리니, 환하게 밝아진 봄 볕에 한껏 짙어진

진달래의 분홍빛이 남도의 바다와 오누이 처럼 어우러져 있다.

이제 막 떠오른 어린 태양의 햇살을 정면으로 받은 진달래는 살짝 황금빛을 머금고 있다

화려한 정찬 뒤의 담백한 디저트 처럼, 새벽 운무가 채 걷히지 않은 남도의 바다에 일출의 여운을 달래며

다시 집으로 향한다.

 

※전남 강진은 넓은 평야와 함께 주작의 날개처렴 펼쳐진 주작산, 덕룡산을 품고, 주작~덕룡과 남으로 이어진

두륜산을 통하여 해남과 이웃하며 북으로는 작은 금강산을 방불케할만큼 빼어난 풍광을 지닌 월출산을 인근

영암과 함께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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