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지리산 둘레길..하동 서당 마을-구례 오미 마을 구간을 걷기 위하여
3박4일의 일정을 위한 짐을 꾸린다.
총 54.3km의 여정이다.
한여름. 유례없는 무더위도 한 풀 꺾인 시점이지만 아직 그 열기가 남아
만만치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단단히 마음을 먹는다.
이 일정이 지나면 주천에서 난동 마을까지 약 20km 1.5구간 정도가
가을의 몫으로 남게되고, 올해가 가기 전 지리산 둘레길을 완주하게 된다.
가을이 지나면, 올해 버킷리스트 하나가 지워지겠지.
다시 찾은 하동읍 터미널. 지난 6월은 떠나기 위해서, 이번엔 시작을 위해서 서당마을로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지난 6월 서당~하동읍까지의 지선을 위해서 중단했던 삼화실~대축 구간의 12구간을, 중단 지점인 서당마을에서
다시 시작한다.
시골 마을버스는 그 자체가 이동식 마을회관이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만큼음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모두가 이웃이고 수다 친구가 된다. 마을 어르신들의 꾸밈없는 사투리가 정겹게 여겨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선과 본선이 갈라지는 서당마을 주막 갤러리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니 시계는 어느덧 오후 2시가 훌쩍 넘었다.
가야할 구간은 악양면 대축마을까지의 총 13km. 시간적으로 서두르지 않아도 될듯하다.
도로를 따라 아스팔트길을 600미터 정도 걷다보면 좌측으로 우계 저수지를 만나게 되고, 저수지쪽으로
꺾어들면 산길로 접어들고 본격적 둘레길이 시작된다.
우계저수지를 지나 우계천을 따라 깊숙히 산길을 오르면 신촌마을이다.
지대가 제법 높은 곳에 있기에 앞서 지나온 길들의 풍경이 한눈에 시원스레 내려다 보이고,
방앗간 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예전에는 제법 큰 마을이었던 것 같다.
인적이 없으니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이 꿀맛 같은 숲속의 정찬을 오롯이 나만이 독차지 한다.
홀로 걷는 숲길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숲길과 임도길을 번갈아 걸으며 경쾌한 발걸음으로 내려오다 보면 어느새 먹점마을이다.
먹점마을을 지나 다시 가파른 고갯길을 넘으면 미점마을로 넘어가는 먹점재다.
먹점재를 넘는 내내 진행 방향에 따라 때론 왼쪽으로 혹은 오른쪽으로 또는 정면으로 섬진강을 보며 걷게 되는데,
그 풍광이 너무나 시원하고 아름다와 힘든 걸음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이다.
미점 마을을 지나다 보면 유독 밤나무들이 많이 눈에 띈다.
하지만 대부분 별도의 주인이 있는 사유지이므로 함부로 손을 대거나 하는 행동은 금해야 한다.
드디어 오늘의 종착지점인 대축마을이다.
대축 마을 입구에는 커다란 바위위에 뿌리를 내리고 자리잡고 있는 문암송(文巖松)이라는 유명한 늙은 소나무가 있다.
하동벌은 예로부터 글깨나 읽는다는 선비들이 많이 찾았던 고장인데 유독 이곳에서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많았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과연 그 생김생김의 기품이 여느 소나무 같지 않다.
문암송을 지나 임도길을 따라 내리막을 가다 보면 마을회관이 나오는데 오늘의 일정은 여기서 마무리 한다.
민박집에 여장을 풀고 하루의 피로를 씻어낸다.
주인 아저씨에게 저녁 식사를 요청하니 시골에서 갓지은 밥에 나물 반찬을 정성스레 내어 온다.
시원한 벌판의 저녁 공기가 더없이 청량하다.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서당마을에서 대축까지의 둘레길은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다.
3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8월의 더위에 적지 않은 땀을 흘려야 했다.
하지만 푸르른 녹음과 정겹게 굽어있는 작은 오솔길, 간간이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결에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원함과 청량함이 있었고, 그 예전 어린 시절 동네 어귀에서
맛보았던 바람의 냄새도 있었다.
섬진강가에 넓게 펼쳐진 악양벌판을 바라보며 문득, 소설 속의 한 장면에 직접 서있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여행길에서만 가질 수 있는 또 하나의 특권이리라.
12번째 구간을 마무리하고 내일의 여정을 위해 오늘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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