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온 길

지리산 둘레길 12구간(서당~대축)

나무 향기 2020. 4. 21.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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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지리산 둘레길..하동 서당 마을-구례 오미 마을 구간을 걷기 위하여

3박4일의 일정을 위한 짐을 꾸린다.

총 54.3km의 여정이다.

한여름. 유례없는 무더위도 한 풀 꺾인 시점이지만 아직 그 열기가 남아
만만치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단단히 마음을 먹는다.
이 일정이 지나면 주천에서 난동 마을까지 약 20km 1.5구간 정도가

가을의 몫으로 남게되고, 올해가 가기 전 지리산 둘레길을 완주하게 된다.

가을이 지나면, 올해 버킷리스트 하나가 지워지겠지.

 

다시 찾은 하동읍 터미널. 지난 6월은 떠나기 위해서, 이번엔 시작을 위해서 서당마을로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지방 도시의 터미널은 특유의 그 분위기가 있다. 하동읍 버스 터미널도 예외가 아니다.
하동은 역시 재첩 아닌가. 서당행 버스표를 끊언놓고 인근 식당에서 재첩국으로 시원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지난 6월 서당~하동읍까지의 지선을 위해서 중단했던 삼화실~대축 구간의 12구간을, 중단 지점인 서당마을에서

다시 시작한다.

지선과 본선의 갈림길. 저 푯말의 맞은편이 유명한 주막 갤러리이다. 붉은색 화살표가 다시금 이정표가 된다.

 

 

 

삼화실-대축

삼화실 - 대축 16.7km 7시간 삼화실 - 대축 : 상 대축 - 삼화실 : 상 구간별 경유지 삼화실(삼화실안내소) - 이정마을(0.4km) - 버디재(1.3km) - 서당마을(1.6km) - 신촌마을(3.3km) - 신촌재(2.7km) - 먹점마을(1.9km) - 먹점재(1km) - 미점마을(1.8km) - 대축마을(2.7km)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동리에서 하동군 악양면 축지리 대축마을을

jirisantrail.kr

시골 마을버스는 그 자체가 이동식 마을회관이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만큼음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모두가 이웃이고 수다 친구가 된다. 마을 어르신들의 꾸밈없는 사투리가 정겹게 여겨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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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선과 본선이 갈라지는 서당마을 주막 갤러리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니 시계는 어느덧 오후 2시가 훌쩍 넘었다.

가야할 구간은 악양면 대축마을까지의 총 13km. 시간적으로 서두르지 않아도 될듯하다.

도로를 따라 아스팔트길을 600미터 정도 걷다보면 좌측으로 우계 저수지를 만나게 되고, 저수지쪽으로

꺾어들면 산길로 접어들고 본격적 둘레길이 시작된다.

시골마을의 한적한 도롯길. 8월 태양 아래 딱딱한 포장도로지만 마음이 여유로우니 길도 운치가 있다.

 

우계 저수지. 강우량이 적어 많이 말라 있다. 길가는 객에게는 목가적 풍경이겠지만 타들어 가는 농심은 어찌할 것인가?

 

우계저수지를 지나 우계천을 따라 깊숙히 산길을 오르면 신촌마을이다.

지대가 제법 높은 곳에 있기에 앞서 지나온 길들의 풍경이 한눈에 시원스레 내려다 보이고,

방앗간 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예전에는 제법 큰 마을이었던 것 같다. 

다랭이 논과 비슷한 갓논이 특징적으로 조성되어있다.

 

녹음이 우거진 여름 숲길을 걷다보면 마치 꿈길을 걷는듯 행복감에 싸일 때가 많다. 이 길이 그렇다.

 

신촌마을 지나 고갯길에서 내려다 보니 우계 저수지를 중심으로 펼쳐진 풍경이 하늘의 구름띠와 어울려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먹점마을로 넘어가는 신촌재. 제법 경사가 급하고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다.

 

 

인적이 없으니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이 꿀맛 같은 숲속의 정찬을 오롯이 나만이 독차지 한다.

홀로 걷는 숲길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녹음과 풀벌레 소리가 바람에 실려 귓가의 땀방울을 식혀준다.
성인 남자의 주먹만큼 큼지막한 밤송이가 파란 여름 하늘을 수놓으며 멋드러지게 익어가고 있다.

숲길과 임도길을 번갈아 걸으며 경쾌한 발걸음으로 내려오다 보면 어느새 먹점마을이다.

외지인들의 잦은 발걸음이 그렇게 달갑지만은 않은 것이 지역 주민들 심정이겠지만, 너끈히 길을 허락해준 마음이 감사할뿐이다.

먹점마을을 지나 다시 가파른 고갯길을 넘으면 미점마을로 넘어가는 먹점재다.

먹점재를 넘는 내내 진행 방향에 따라 때론 왼쪽으로 혹은 오른쪽으로 또는 정면으로 섬진강을 보며 걷게 되는데,

그 풍광이 너무나 시원하고 아름다와 힘든 걸음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이다.

먹점재를 넘어가는 동안 멀리 섬진강가로 펼쳐진 하동벌을 보게 된다. 강건너 마을이 매화 마을로 유명한 광양 다압면이다.

 

미점 마을을 지나다 보면 유독 밤나무들이 많이 눈에 띈다. 

하지만 대부분 별도의 주인이 있는 사유지이므로 함부로 손을 대거나 하는 행동은 금해야 한다.

대축마을로 내려서는 고갯길. 멀리 악양벌이 펼쳐져 있다.
섬진강 줄기 따라 펼쳐진 악양벌판. 여기가 소설 토지에 등장하는 최참판 댁 땅이다.

 

드디어 오늘의 종착지점인 대축마을이다.

대축 마을 입구에는 커다란 바위위에 뿌리를 내리고 자리잡고 있는 문암송(文巖松)이라는 유명한 늙은 소나무가 있다.

하동벌은 예로부터 글깨나 읽는다는 선비들이 많이 찾았던 고장인데 유독 이곳에서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많았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과연 그 생김생김의 기품이 여느 소나무 같지 않다.

대축마을의 상징인 문암송. 밑에 바위에는 그 유래와 시인묵객들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문암송을 지나 임도길을 따라 내리막을 가다 보면 마을회관이 나오는데 오늘의 일정은 여기서 마무리 한다.

오늘 만나게 되는 마지막 이정표. 집 앞마당에 서있는 모습이 어찌보면 익살스럽기도 하다.

 

 

오늘 묵을 민박집. 정갈하고 시원한 바람이 일품이다. 뒤로 조금 전 넘어 내려온 지리산 줄기가 보인다.

 

민박집에 여장을 풀고 하루의 피로를 씻어낸다.

주인 아저씨에게 저녁 식사를 요청하니 시골에서 갓지은 밥에 나물 반찬을 정성스레 내어 온다.

시원한 벌판의 저녁 공기가 더없이 청량하다.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전원의 저녁 노을을 보며 즐기는 만찬은 조촐하지만 너무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영화의 한 장면이 부럽지 않다.

 

서당마을에서 대축까지의 둘레길은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다.

3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8월의 더위에 적지 않은 땀을 흘려야 했다.

하지만 푸르른 녹음과 정겹게 굽어있는 작은 오솔길, 간간이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결에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원함과 청량함이 있었고, 그 예전 어린 시절 동네 어귀에서

맛보았던 바람의 냄새도 있었다.

섬진강가에 넓게 펼쳐진 악양벌판을 바라보며 문득, 소설 속의 한 장면에 직접 서있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여행길에서만 가질 수 있는 또 하나의 특권이리라.

12번째 구간을 마무리하고 내일의 여정을 위해 오늘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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