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다녀온 길

구름의 고향 파미르에서 꿈을 마주하다-3.바람을 타고 고원으로

나무 향기 2022. 9. 1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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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그에서의 아침이다.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빙하수의 덕일까? 파미르 인근에서 맞는 아침은 항상 상쾌하다.

파미르의 본격 고원 지대로 출발하는 오늘 아침도 역시 말할 수없이 상쾌하고 햇살 마저 더없이 깨끗하다.

일행중 절반은 벌써 마을 인근을 돌아보며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한데 나는 그 상쾌함과 여유로운 아침시간을 즐기기 위해 카메라 대신 모닝 커피를 선택했다.

군트강 위로 부서진 교각 위에 놓인 다리. 현지 주민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일행이 보인다.

 

천연 공기 청정기인 빙하수가 빚어 놓은 상쾌한 아침 공기로 한껏 정신을 가다듬고 숙소를 한 바퀴 둘러보는데 유난히 볼살이 통통한 고양이 한 마리가 마당 한가운데 도도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뭘 보냐는듯 새침하게 돌아보는 길냥이..그 모습마저 귀엽다. ^^

 

두샨베에서 호로그까지 이동하는 내내 여기 타지키스탄의 길냥이, 개들이 자유롭게 다니는 모습을 흔하게 만났다.

사람들도 그리 신경쓰거나 경계하지 않는듯하고, 그저 생활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서로가 어울려 지내는 모습.

우리 사회에서 종종 논란이 되는 그런 사건 사고들이 이 곳인들 없진 않겠지만, 대처하는 모습이 우리와는 너무나 다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숙소 직원들과 아쉬운 인사를 하는 동안 차량들이 도착.

일행들은 미리 내려놓았던 각자의 짐들을 차에 싣고 출발한다.

숙소를 떠나기 전 호텔 직원들과 단체 촬영

 

오늘은 야실쿨 호수 인근 부룬쿨이라는 마을에서 홈스테이로 하루를 묵으며 밤하늘을 촬영하고 다음 날 고원의 첫 아침을 맞이할 예정이다.

호로그에서 부룬쿨 마을까지는 질러가는 가까운 경로가 있지만 파미르 하이웨이를 따라 펼쳐진 고원의 멋진 풍경과 판지강의 굽이치는 물결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판지강을 따라 돌아서 가야한다.

이동 거리는 250km 남짓. 이동중에 포인트에서 사진 촬영을 겸해서 이동할 것이므로 만만치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10시간 이상을 비포장 도로의 하이웨이를 달려야할 것 같다.

호로그에서 부룬쿨 마을 홈스테이까지의 경로(좌)와 지도상의 부룬쿨 마을(우)

 

갈 길은 멀지만 마음은 여유롭다.

여행은 그런 것이고 또 그래야만 여행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다.

길은 달릴수록 먼지가 뒤덮이는 그야말로 거칠기 짝이 없는 길이지만, 옆으로 보이는 강줄기와 물감처럼 파란 하늘이 펼쳐보이는 눈앞의 경치는 그야말로 청정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파미르 기행은 거칠고 투박하면서도 깨끗하고 청량한, 이런 자연의 모습을 느끼기 위함이다.

 

 

구불구불 굽어진 산비탈 비포장 도로를 낯선 이국땅의 대중 음악을 들으며 즐기는 드라이브도 해변가 오픈카를 타고 힙합을 듣는 것에 비하여 결코 모자람이 없는 멋진 경험이다.

1시간 정도를 이동하다 경치 좋은 곳 강가에 조금나 카페에 들러 파란 하늘 아래의 빙하 계곡을 배경삼아 멋진 여유를 만끽한다.

카페 옆을 흐르는 판지강과 고원의 봉우리들
뜨거워진 햇살을 피해 강물 소리를 들으며 가볍게 알콜 음료로 목을 축인다. 달콤하고 시원하다.

 

파미르는 지대가 높고 건조한 탓에 고산 식물 외에는 살기가 힘들지만, 깊은 계곡을 흐르는 만년 빙하의 강물이 있어 강의 유속이 그리 빠르지 않은 완만한 구릉지대나 평원의 경우 간간히 숲과 초목이 우거진 지역이 있고, 그런 곳엔 여지 없이 크고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사람들이 풍요롭진 않지만 여유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카페에서의 시원한 휴식 후 1시간반 남짓을 달렸을 때였다. 조용한 실개천가에 파릇파릇 낮은 풀들이 가득한 마을이 나타난다.

푸른 초원 위에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과 노래하듯 굽어져 흐르는 실개천.

그림에서나 볼 수 있었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소들을 데리고 나온 마을 청년(?)들과 가족들.

척박한 생활 환경 탓인지 여기 사람들은 겉보기 보다 나이가 의외로 어리다.

소들은 자유롭게 풀을 뜯고, 청년들은 나무 그늘에 앉아 수다로 시간을 보낸다.

 

가이드를 통해 청년들과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사진도 씩고 하는 도중 가족으로 보이는 꼬맹이들과 나이든 여인이 나타난다.

함께 사진 촬영을 부탁했더니 흔쾌히 응하고 자리를 잡아 포즈를 위해준다.

파미르를 오가며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지인에 대해 전반적으로 개방적이고 호의적이다.

생활에 찌들지 않고 고도의 물질 문명은 없을지라도 마음 하나 만큼은 누구보다도 여유롭고 풍요로운 것 같다.

배 고프지 않고 추위와 욕심에 시달리지 않으면 인간은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는 가장 평범한 삶의 가치.

파미르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미소 속에서 너무 흔하게 보았던 것들 중 하나다.

바람도 쐴겸 같이 나왔을까?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과 청년들 그리고 어린 동생들.

 

목동 가족들과의 유쾌한 시간 덕에 아름다운 풍경과 소떼들을 넘치도록 감상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랑가르를 그냥 지나친다.

마을에서 하루를 쉬며 지역 주민들과 스킨쉽도 나누며 좀 더 가까이할 수 있는 곳이지만 전체 일정을 고려해서 그냥 지나쳐 버린다.

많은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다.

푸른 강여울을 끼고 아직은 초원이 펼쳐진 평화로운 고원 지대를 지난다

 

초목 지대가 지나자 제대로된 파미르 하이웨이의 거친 모습들이 나타난다.

바위만한 굵은 자갈들이 바닥을 포장하고 있고,

 

좁은 비탈길은 자칫 잘못하면 길가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구간들이 이어진다.

 

그러나, 끝없이 펼쳐진 넓은 하늘과 봉우리마다 꼭대기에 이고 앉은 새하얀 만년설의 매혹적인 모습은, 거친 길과 위험한 낭떠러지 마저도 아름답게 느껴질만큼의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안겨주기에 아직도 많은 나그네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고장난 채 버려진 주인 잃은 자동차. 주인이 다시 찾아갈 수 있을까?

 

화칸북로를 달린다.

그 옛날 고구려 유민으로 당나라에 귀의해서 당나라의 서역 경영에 큰 족적을 남겼던 고선지 장군이 휘하 군대를 이끌고 질주했던 그 길이다.

길은 누가 가느냐에 따라 평화의 길, 풍요의 길이 되기도 하고 전쟁과 파괴의 길, 재앙과 고통의 길이 되기도 한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은 어떤 길이 될까...

눈앞의 산 너머가 와칸주랑이다. 아프가니스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갈 수가 없다.

 

한참을 거칠게 달리다 보니 언덕에 위치한 작은 민가가 나타난다.

많지 않은 가구들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역시 여유로와 보인다.

언덕위에서 밭을 돌보고 있던 마을 주민과 그 집 아들로 보이는 남자 아이.

 

아직 수줍음이 가시지 않은 꼬마 숙녀와 이미 다 커버린 어른처럼 의젓한 남자 아이가 손 흔들어 인사하며 반긴다.

일행들의 주머니에서 어김없이 사탕과 쵸코바가 나온다.

파미르를 여행하다 보면 가장 자주 마주치는 풍경이 소몰이와 염소, 양들의 행렬이지만 매번 볼 때마다 사랑스럽고 신기한 기분에 한 번도 식상한 적이 없다.

가축을 몰고 나온 목동들이 대부분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었기에 그 순수함과 대견스러움이 작용해서였을까?

철없을 시절의 철부지들이 집에서, 마을에서 주어진 일들을 구김살 없이 공동체의 생산적 구성원으로 나름 한 몫을 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대견하게 느껴진다.

소를 몰고 나온 어린 형제들

 

할아버지와 함께 염소떼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는 꼬마
집으로 가는 길. 개, 노인, 꼬마의 발걸음엔 따스한 온기가 담겨있다.
오늘 갓 나온 새끼 염소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 환한 미소가 잊혀지지 않는다.
염소떼가 오면 차가 멈추어 서야한다.

 

해질 무렵이라 서둘러 집에 돌아가는 서너 무리의 염소, 양떼와 이리저리 어울리다 보니 시간이 제법 흘렀다.

구름마저 두꺼워져  갈 길이 멀기에 다시 길을 재촉한다.

와칸 산맥이 줄곧 우측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함께했다.

 

빠르게 어두워진 하늘.

달리는 자동차 불빛 외엔 아무런 빛도 없는데 잠시 휴식을 위해 차를 세운 사이 하늘 위로 달빛이 밝게 드러났다.

휴대폰으로 급하게 담은 파미르의 밤하늘

 

부룬쿨의 홈스테이에 도착하니 밤 9시가 조금 넘었다.

오늘도 거의 12시간을 차량으로 이동한 셈이다.

해발 고도가 거의 4천미터 가까이 되는 고지이다. 서서히 고산 증세로 두통을 호소하는 일행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랑가르에서 하루를 쉬었으면 좀 더 여유있게 올 수도 있었고 그 만큼 천천히 올라오면서 고도 적응을 좀 더 수월하게 할 수도 있었던 일인데 너무 촉박하게 일정이 진행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쉽게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보니 일정을 너무 욕심껏 잡은 탓이다.

하늘엔 구름이 가득한지 별빛이 모두 숨어버려 자취를 감춘다. 은하수와 별 촬영은 이미 물건너간 상태.

피로와 고산 증세로 지친 몸을 겨우 씻고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서야 잠자리에 든다.

밤바람이 매우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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