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다녀온 길

구름의 고향 파미르에서 꿈을 마주하다-4.고원에서 바람이 되다.

나무 향기 2022. 9. 25. 16:41
728x90

아침이다.
킬리만자로 동정 이후 오랜만에 맞은 고원의 아침. 해발 3천8백미터이다.
6천미터 근처까지 경험했던 터라 이 정도 높이에서 고산증세는 어차피 그리 신경쓸 일이 아니지만, 일교차가 큰 날씨에 연일 이어지는 휴식 없는 장거리 이동 덕에 몸은 많이 지쳐 있었는지 더없이 맑고 신선한 아침공기에도 불구하고 몸을 일으키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전날 밤 늦게 도착하여 충분한 휴식도 없이 부랴부랴 눈을 붙인 터라 더욱 몸은 무겁게 느껴졌다.
어찌어찌 힘겹게 몸을 일으켜 간단한 세면 후에 마을 구경을 나선다.

한여름이지만 제법 쌀쌀한 고원의 아침은 깨끗하다 못해 투명하기까지 하고, 지난 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마을의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나며 아침 인사를 건넨다.

고원 지대의 건물은 특별한 양식도, 개성있는 꾸밈새도 없이 단촐하고 솔직하다. 사각형 모양의 주택들


파미르 고원 지대에는 늑대들이 많다. 염소,양,소 등 늑대들이 좋아하는 먹잇감들이 많이 있는 것도 원인이겠지만 그 척박함 속에서 목숨을 유지할만한 움직이는 생명체가 인간 외에 늑대라면 이해가 갈 법도 하다.
파미르 지역의 민가에서는 몸집이 큰 대형견들을 키우는 것이 일반적인데, 늑대의 위협으로부터 인간과 가축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충성심 강한 개가 없어서는 안될 존재일 거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애완용 반려견이 아니라 생명을 같이 나누고 서로 지켜주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반려견.

부룬쿨 마을의 대형견 중 최상위 우두머리 격인 개. 앉아있는 폼새가 제법 무게감이 있다.

야크나 소 같은 가축의 배설물은 파미르 고원 지역 주민들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생활 필수품이다.
나무도 없거니와 석유, 가스 같은 화석 연료는 상상도 못할 일이기에 이 지역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가축의 배설물을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난방은 물론, 심지어는 음식 조리에도 거의 빠지지 않고 요긴하게 쓰인다.
물론, 요즘은 휴대용 용기에 충전된 가스를 쓰는 경우가 많이 늘었지만 아무래도 가성비 측면에 있어서는 아직은 저 배설물이 훨씬 경쟁력이 있어 보인다.
게다가 각 집집마다 각자 창고 속이나 담벼락 같은 곳에 말려서 보관하는데 냄새도 전혀 나지 않아 신기할 정도이니 이만한 연료가 또 어디 있을까?

집집마다 갖추어진 배설물 창고. 추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만큼 화력도 좋고 친환경적이다. 어릴적 집마다 있던 연탄 창고가 생각난다.


마을 주변은 낮게 흐르는 실개천에 파란 하늘이 멋지게 반영되는 넓은 초지로 이루어져 있다.
아침 일찍 가축들을 몰고 나가 마을은 적막하기까지 한데 떠오르는 태양빛은 강렬해서, 아침인데도 썬글라스를 끼지 않고서는 눈을 상할 정도로 눈이 부시다.

멀리 산등성이 뒤로 떠오르는 아침 햇살과 마을의 풍경. 깨끗한 하늘만큼이나 햇살도 눈이 부시다.
소를 몰고 나가는 마을 아낙


마을 바로 옆 초원에는 소들이 띄엄띄엄 풀을 뜯고 있는데 주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 곳의 가축들은 아침에 주인들이 몰고 나와 놓아주면 스스로 풀을 뜯고 초원에서 종일 지내는데, 해질 무렵이면 주인들의 부르는 소리를 알아듣고 함께 제 집으로 알아서 돌아간다. 참으로 영특하다.
굳이 고삐를 잡고 있을 이유가 없으니 사람도 자유롭고 가축도 자유롭고...
고원에서는 모두가 바람처럼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소를 몰고 나간 주인은 적당한 곳에 이르면 고삐를 아예 던져 버려 소들이 자유롭게 다니도록 놓아준다. 고원에서의 삶은 바람처럼 자유롭다.

 

누렇게 늘어진 거친 고원에도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개천가에 오아시스처럼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다.


초원의 아침으로 한결 가벼워진 컨디션으로 아침 식사를 하는데 오늘 메뉴는 일행이 출국때 준비해온 쌀과 간편식 된장국으로 차려진 한국식 밥상에 김치까지 차려졌다. 멀고 먼 타국 땅에서 이만한 진수성찬이 또 있을까?
식사를 배불리 마치고 다시 차에 오른다.
마을에서 멀지 않은 야실쿨 호수를 둘러 보고 올 참이다.

일정 내내 타고 다녔던 우리 차의 드라이버 막스와 함께. 내가 쓴 모자가 마음에 들었던지 굳이 자기가 쓰고 사진을 찍는다.


파미르는 오랜 옛날 대륙판의 거대한 충돌로 인하여 바다밑 지형이 융기하여 지금의 히말라야 산맥등이 생성될 시기에 함께 솟아올라 고원이 되었다고 보는데 파미르 지역의 화석이나 지층에서 바닷속 흔적이 많이 발견되고, 실제로 크고 작은 호수들이 많으며 바다가 융기된 후 바닷물이 증발된 자리의 염분이 토양에 남아 사막같이 펼쳐진 소금밭도 많다.
야실쿨은 그 많은 호수들 중 하나이다.

위성에서 내려다 본 야실쿨(가운데 깉은 부분). 산봉우리의 하얀 만년설과 주변에 짙은 색으로 보이는 크고 작은 호수들.


차량으로 10분 남짓 달린다.
거짓말처럼 펼쳐진 푸른 호수가 크지막한 보석처럼 눈앞에 나타난다.
사납게 흐르는 판지강의 거친 물줄기 대신 거울처럼 고요하고 맑은 호수가 눈앞에 펼쳐지니 느낌 또한 새롭다.
하늘보다 푸른 빛을 띤 야실쿨. 마음마저 시원하게 씻겨나가는 느낌에 고산에서의 숨가쁨은 채 느낄 겨를도 없이 이리저리 다니며 연신 카메라와 눈과 가슴에 그 모습을 담기 바쁘다.

야실쿨 호수의 전경
야실쿨 호수 바로 앞까지 내려가는 도로.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호수에 직접 다다를 수 있다.
일행이 담아준 인생샷 한 컷.


호수도 아름답지만, 호수 주변을 둘러싼 풍광 또한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시원하고 웅장하다.

거친듯 사나와 보이는 고원의 산맥들. 자세히 보면 거침 속에 부드러움도 함께 보이기에 더 경이롭다.
호숫가까지 차를 타고 이동한다. 손도 적셔가며 한참을 머물렀다.
끝이 없다. 푸른 하늘빛에 가슴이 후련해지는 무한 경계를 느낀다.


바람소리 외에는 일행들의 발소리 밖에 없는 고요한 호숫가에서 기분 좋게 내려오는 아침 햇살을 즐기다 보니 예상했던 시간을 넘겨버렸다.
오늘의 본격적인 일정을 위해 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부룬쿨로 차를 몬다.

야실쿨로 돌아오는 길에 멀리서 본 부룬쿨 마을과 초뤈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