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로그.
타지키스탄 제2의 도시이자 오랜 기간 파미르의 관문으로 동서양 문화 교류의 중심이었던 곳이며, 파미르를 대표하는 군트강와 판지강이 합쳐지는 물의 도시이기도 하다.
7~8세기 현장법사와 혜초선사의 기록에는 비록 살육과 약탈을 서슴치 않는 야만스러운 부족 무리로 표현되어 있지만, 파미르를 지나던 그 당시의 많은 길손들에게는 달콤한 휴식과 새로운 문물을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곳이었으리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의 오고가는 발길로 인하여, 척박한 환경에서도 나름의 풍족함과 번성함을 누렸을 것이다.
호로그로 들어가는 유일한 도로는 파미르 하이웨이가 유일한데, 일국의 제2의 도시로 들어가는 주 도로 치고는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
판지강의 거친 물결을 옆으로 두고 좁은 산비탈을 따라 거의 비포장에 가깝게 조성되어 자칫 잘못하다가는 매우 위험한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고, 예고없이 굴러 떨어진 큰 바위로 인해서 길이 막히면 몇일간 꼼짝달싹 못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사실 호로그에는 작은 공항도 있어 항공편이나 헬기로도 이동이 가능하지만 굳이 육로를 선택하는 이유는, 그러한 험한 환경 조차도 파미르로 가는 투어가 가진 거칠고 황량한 자연이 건네주는 빼놓을 수 없는 매력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판지강을 중심으로 호로그로 이어지는 좁은 길은 거친 강물과 어우러져 묘한 풍경을 만들어내는데 그 황량함이 주는 낯선 감성은 어쩌면 외지의 나그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파미르의 일부가 되도록 만드는 일련의 동화 작업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그 길을 가는 이유일 것이다.
덜컹거리며 한참을 달리니 이내 한나절이 지나고 점심 시간이다.
식사를 할 수 있는 마땅한 장소를 찾지만 거친 파미르 하이웨이에 그런 곳이 때에 맞게 나타날 일은 없다.
전전긍긍하던 차에 같이 탄 차량의 운전기사의 엄마가 사는 마을이 인근에 있다 하여 그 곳에서 현지 가정집에서 먹는 그대로의 식사를 맛보기로 한다.
판에 박힌 식당 음식보다는 현지 가정집에서 차려주는 담백하고 꾸밈없는 식사가 오히려 이런 여행길에서는 이쩌면 더 제격일 수도 있는 일이다.
현지인의 집에 초대 받아 나름 정성어린 대접을 받아보는 것도 외지 여행의 묘미가 아닌가.
집에서 직접 기른 과일과 채소 그리고 견과류 등이 식전에 테이블에 놓이고 맛있는 감자와 양고기로 우려낸 국물이 메인 식사로 제공되었다.
특이한 것은, 아무런 가공도 하지 않은 생파를 깨끗이 씻어 토마토와 함께 그냥 주는데 이를 어찌하나...한참을 고민하다 그냥 토마토와 함께 생으로 우적우적 씹어 먹어버렸다. 나름 신선하고 의외로 맵지 않아 상큼한 파 향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는데 생파를 씹어 먹은 것은 이 때가 난생 처음이었을 것이다.
참고로, 파미르는 고대 중국 지리서에 파총이라는 지역명이 사용되기도 했을 만큼 오래전부터 야생파가 유명한 파의 산지로 많이 알려진 지역이다.
양고기 스튜는 너무 맛있어서 두 그릇을 비웠고, 살구와 사과도 오랜만에 맛보는 신선함이 가득했기에 본의 아니게 이것저것 과식을 해버렸다.
따뜻하게 즉석에서 준비된 엄마표 식사를 배불리 하고 잠시 쉬었다 길을 나선다.
모자라지 않을 만큼의 감사의 표시로 식사에 대한 보답은 하고 나왔지만, 주름진 얼굴로 반갑게 맞이하며 예고없이 찾아온 손님을 위하여 정성으로 음식을 준비해주던 여인의 얼굴이 쉬이 잊혀지지 않는다.
행여 찾아온 손님들이 불편해 할까봐 한참 짖궂고 요란스럽게 놀 나이임에도 손님들 식사가 끝날 때까지 점잖게 자리를 지켜준 꼬마 어른들이 대견스럽고 한 편 귀엽기도 하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는 만나보기 힘든 순수함이랄까....
아름답고 이국적인 풍경은 물론이겠지만 그 외에도 이런 보통 사람들과의 만남과 교감을 통한 따뜻한 느낌들이 여행 중 얻을 수 있는 더 소중한 선물이 될 때가 많다.
점심 식사 후 천천히 비포장 도로를 이동하다 보니 어느 작은 마을에 남자 아이가 토마토를 팔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보았다면 대번에 아동 착취(?)니 뭐니 온갖 부정적인 말들이 나올법한 상황이겠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
사회적 도덕의 절대적 기준은 있을 수 없다. 어디에서는 비난을 받고 어디에서는 그렇지 않고...
꼬마 아이에게서 산 토마토를 맛있게 먹으며 다른 일행들보다 조금 먼저 도착한 곳은 타지키스탄 대통령의 별장이 있는 호로그 보타닉 가든.
호로그 전체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타지키스탄 대통령의 별장과 함께 조성되어 있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풀고 다시 시대로 나선다.
호로그는 도시를 감싸 흐르는 군트강이 판지강과 합쳐지는 곳으로 비교적 수자원이 풍부해 수력 발전소와 주립 대학, 시립 공원까지 여러가지 대규모 인프라가 갖추어진 대도시이다.
크지 않은 상가 내부를 훌쩍 둘러보고 건물 뒷쪽으로 내려서니 맹인 악사가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다.
발 앞에 놓인 상자에 돈이 놓이면 손으로 확인하고 노래를 부르는데, 가사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왠지 그 선율과 목소리에 묻어나오는 애잔함이 가슴을 파고들어 노래가 끝난 후에도 잠시 그 여운에 발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치 오래전 실크로드의 중심지로 화려했던 그 때를 추억하며 지금의 현실을 애닯아 하는 음유시인인듯했다.
투박하고 정제되지 않은 목소리와 깊게 패인 주름, 음률에 따라 알 수 없게 변하는 표정의 변화에서 천년의 회한과 서러움을 느끼며 호로그의 좁은 시장 뒷골목을 나섰다.
큰 강을 두개나 끼고 있으니 호로그에는 항상 물소리가 넘친다.
사람들은 좁은 다리를 통해 어깨를 부딪히며 강을 건너 다니고, 산봉우리와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군트강은 호로그 시내를 가로질러 판지강으로 합류해 큰 물줄기의 일부가 된다.
뙤약볕 아래 시장 골목과 여러 곳을 걸어 다니느라 갈증도 나고 다리도 뻐근해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숙소에서 중심 상가를 지나 강쪽으로 꺾어들면 시립공원을 볼 수 있는데 입장은 무료이고 개장 시간은 야간까지로 많은 시민들이 편한 시간에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
큰 규모은 아니지만 자작나무가 멋드러지게 군락을 이루고 아이들 노는 소리가 제법 끊이지 않아 유쾌한 산책을 위해서는 모자람이 없는 곳이다.
공원 이곳저곳을 걷다보니 공원의 끝자리가 군트강과 맞닿아 있는데 한가로이 낚시를 즐기는 어르신의 모습이 매우 여유로와 보이기에 몇마디 나누었더니 한국을 안다고 한다. 좋은 나라라고...
그 노인분이 어찌해서 한국을 좋은 나라로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세상이 많이 변했다.
이제 내일이면 본격적으로 파미르의 고원 지대로 진입하게 된다.
호로그는 비단 파미르로 오르기 위한 경유지가 아니더라도 그 자체로 한가함과 함께 쉬어가도 좋을만한 곳이다.
도시 전체가 사람들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절박함과 성급함 보다는 평화로움과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그런 곳이다.
내일의 출발을 위해 하루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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