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다녀온 길

구름의 고향 파미르에서 꿈을 마주하다.-1.파미르로 가는 길

나무 향기 2022. 9. 17.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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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미르.

평균 해발 고도 6,100m의 높은 봉우리들로 이어진 산맥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고원 지역으로 북으로는 텐샨산맥, 남으로는 히말라야 산맥의 줄기인 힌두쿠시와 카라코람 산맥을 두고 서쪽으로 이란 고원, 동으로는 티뱃과 맞닿아 있어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우는 곳.

설봉들이 즐비한 파미르 고원의 장엄한 산줄기

지대가 높아 기후는 건조한 대륙성이며 강수량이 적고 주변 산맥의 봉우리 끝은 항상 눈에 덮여 있으며 큰 기온 차로 인하여 키작은 고산 식물들 외에는 푸른 빛을 찾아보기 힘든 곳.

그 곳은,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 존재하는, 그런 곳이다.

1km당 겨우 1~2명 정도의 낮은 인구밀도(출처:다음백과사전)는 그 열악한 생존 환경의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표시된 부분이 파미르 고원의 중심부. 대부분 타지키스탄 영토에 속해있다.

 

파미르 고원의 대부분은 타지키스탄에 속하고 주민의 대부분이 농업과 목축을 주된 생업으로 하는 타지크족이지만 일부 동쪽 지역에는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키르키즈스탄 주민인 키르키스족이 거주하고 있어 종종 국경 분쟁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다양한 문화적 색채가 주는 긍정적 측면도 없지는 않다.

지형은 서쪽이 낮고 동쪽으로 갈수록 지대가 높아지는 전형적인 동고서저형이며 고원으로 향하는 도로는 대부분 좁은 산길로, 도로 상태도 험하고 거칠어 튼튼한 SUV 차량이 아니고서는 다니기 힘든 오지이다.

일정 내내 8명의 일행들이 타고 다닌 SUV차량.일반 승용차로는 엄두도 못낼 일이다.

 

파미르로 진입하는 경로는 여러 곳이 있지만, 판지강의 거친 물살의 역동성과 힌두쿠시와 히말라야의 눈덮인 새하얀 산봉우리들의 장엄함을 느끼려면 판지강을 따라 타지키스탄 수도인 두샨베에서 키르키즈스탄의 오쉬까지 이어지는 파미르 하이웨이를 타고 오르는 것이 거의 유일한 루트이다.

두샨베 공항의 모습(좌)과 두샨베 시내 도로(우)

 

 
파미르 하이웨이 안내도.(출처:https://www.advantour.com/img/tajikistan/pamir_map.svg)

 

파미르 하이웨이를 통해 파미르를 오르기 위해서는 타지키스탄의 제2의 도시인 호로그를 거쳐야한다.

호로그는 옛날 알렉산더의 동방 정벌과 중국 한무제의 서역 정벌 이래로 헬레니즘의 영향 등 동서양의 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던 문화 교류의 요충지로, 7세기 당나라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와 8세기 신라 혜조선사의 왕오천축국전에 식닉국 혹은 쉬그니국이라는 명칭으로도 등장하는,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이다.

타지키스탄은 이슬람의 세력권으로 들어오면서 주로 이란계 혈통이 정착하여, 지금도 인종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이란과 매우 유사한 측면이 많으며, 호로그는 파미르 고원의 관문으로서의 역할을 하며 코로나 이전까지 외부인의 방문이 매우 왕성했던 곳이다.

호로그까지의 진입 도로인 파미르 하이웨이는 일반적인 개념의 하이웨이가 아니라 단지 높은 곳에 있는 길이라는 단순한 의미의 하이웨이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두산베에서 외곽으로 빠지는 파미르 하이웨이 구간. 해발 2,000m까지 이어진다. 도로 포장 상태등 제법 정비가 잘 되어 있다.

해발 2,000m도로 정상에서 내려다 본 풍경. 오른쪽에 우리가 타고 온 도로가 뱀처럼 길게 늘어져있다.
끝없는 평원. 도로와 나란히 철도가 놓여있다. 안전 표지나 신호대가 거의 없고 침목도 부실해 보인다.

 

우리 일행도 타지키스탄의 수도인 두샨베에서 호로그까지는 거리가 멀어 육로로 한 번에 이동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 칼라이쿰을 중간 기착점으로 삼아 하룻밤을 지내기로 하고 종일 달려 도착하니 어느새 밤 9시다.

두샨베 공항에서 꼬박 12시간을 이동한 셈이다.

직접 운전은 하지 않아도 야간 차량 이동은 위험하고 피곤하기는 매한가지다.

 

새로 조성된 M-41도로가 아닌 기존의 도로를 따라 판지강을 거슬러 중간중간 사진 촬영을 겸해서 이동하다보니 370km 이동에 시간은 거의 하루의 절반이 소요되었다.

두샨베 외곽의 마을 인근. 목가적인 풍경이 눈을 사로잡고, 급히 차를 세워 사진으로 담는다. 평화롭다.
당나귀 한 마리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가족인듯한 한 무리의 소들이 마을길을 자유롭게 걸어다니고 있다.
넓게 펼쳐진 목화밭과 일하러 가는 타지키스탄의 아낙들. 반갑게 웃어주는 미소가 정겹게 느껴진다.
인가가 보이지 않을 즈음. 서서히 대자연의 웅장함이 모습을 드러낸다. 멀리 강 건너 땅은 아프가니스탄이다.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 거대한 규모의 지층이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머금은 채 탄성을 자아낸다.
거친 산등성이가 잘 다져진 근육처럼 남성미를 드러내며 시선을 붙든다.

 

칼라이쿰은 현지어로 모래 도시라는 뜻을 가졌다고 한다. 그 옛날 이 지역의 기후와 환경이 어떠했을지 쉽게 짐작이 가는 이름이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다르보즈라고도 하는데 다르보즈는 관문이라는 뜻을 가진 현지어이기에 이 곳 역시 오래전부터 여러 발길들이 오가는 길목이었음을 알 수 있다.

통신도, 마땅한 이동 수단도 없던 그 시절에도 이 험한 곳을 오가던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인간의 의지가 참으로 경외스럽기만 하다.

파미르 하이웨이.  칼라이쿰으로 야간 이동

거칠게 포장된 도로를 거의 종일 달려온 탓에 피곤한 몸을 재촉하여 밤 늦도록 짐을 풀고 힘들게 식사를 마치고 나니 때마침 굵은 장대비가 억수처럼 쏟아진다.

낯선 여행지에서 피곤한 몸을 누인 채로 요란한 빗소리에 잠을 청하기가 뜻대로 되지 않아 숙소의 로비에 나갔더니 역시 같은 이유로 잠못 들고 밤을 보내는 일행들이 있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새벽녘에서야 잠이 들었다.

 

다음날, 칼라이쿰에서 맑은 공기로 가득한 이른 아침을 맞는다.

잠시 여유가 있어 숙소 뒤로 이어지는 낮은 언덕이 눈에 띄어 올라섰더니 숙소 주변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숙소 앞을 흐르는 강은 아프가니스탄과의 국경을 이루는 판지강. 강건너 아프가니스탄 마을이 옆동네인 것처럼 가깝게 보인다.

칼라이쿰 숙소 뒤 언덕에서 내려다본 마을 정경. 숙소 앞의 판지강과 건너편 아프가니스탄 마을의 모습.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검은 밤공기 속에 보았던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그렇게 굵은 장대비를 밤새 쏟아 붓던 하늘도 이제는 좀 진정된 듯 옅은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군데군데 드러나고 있었다.

안개같은 구름의 움직임과 아래로 흐르는 판지강의 경쾌한 물살이 이루는 묘한 대비를 시간을 잊은 채 감상하고 있는데, 장막처럼 펼쳐진 옅은 구름 위로 빛깔도 선명하게 쌍무지개가 피어 오른다.

끝과 끝이 너무도 선명한 쌍무지개...태어나서 처음 보는 완전한 무지개다.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 카메라를 들고 나와 급하게 셔터를 누른다.

힘들고 험한 여행길에 이렇게 가까운 하늘위로 쌍무지개를 볼줄이야....!

이번 여행의 안녕을 기원하는 축복? 여행기간 중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무지개에 실어 보낸다.

 

문득, 힘들게 달려왔던 지난 밤의 피곤함은 무지개가 온전히 빨아들인듯이 온몸에 생기가 도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아울러, 앞으로 펼쳐질 여정에 대한 기대가 무지개를 따라 한껏 부풀어 오르는데 오랜만에 느껴보는 어릴 적 설레임이다.

여행은 세월을, 나이를 넘나들게 하는 타임머신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아이는 여행을 통해 어른이 되고, 어른은 여행을 통해 동심으로 돌아간다.

쌍무지개의 설레임 속에 한껏 기분이 들뜬 채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또다시 길을 떠날 채비를 한다.

칼라이쿰 숙소 앞에서 일행들과.

 

어제보다 훨씬 길고 험한 좁은 산비탈 길을 달려 파미르의 관문 도시인 호로그로 이동하게 된다.

호로그까지는 곧바로 내달을 경우 일반적으로 대략 6시간 정도.

우리 일행은 사진 촬영을 위해 여러번 차를 세우면서 이동해야 하기에 넉넉하게 9시간 정도를 예상한다.

이동 중에 시간을 체크하며 늦은 오후, 저녁 시간 이전에 도착하기로 하고 각자의 차에 오른다.

숙소 앞에 서있던 구. 러시아제 라다 승용차. 왠만해서 보기 힘든 자동차이기에 기념으로 한 컷.
아침을 든든히 챙기고 호로그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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