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천사들의 고향, 파미르

나무 향기 2022. 12. 28.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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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미르 퍼밋.

타지키스탄을 경유해서 파미르를 오르기 위해서는 타지키스탄 정부에서 발급하는 통행증이 있어야 하는데 파미르 퍼밋이 바로 그것이다.
저 퍼밋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마치 천국행 열차표를 얻은듯 설레임과 흥분감에 어린 아이 처럼 마냥 좋아서 어쩔줄 몰라했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땐 그냥 막연하게 몇년을 벼르다 기어이 오르게 된 파미르 고원에 대한 오랜 갈망이 해소되어, 그 기분에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으로 생각했었다.
 
척박한 고원.
풀 한 포기 자라기 힘든 거친 땅과 메마른 공기.
그 곳엔 아무 것도 없고 오로지 그 땅 위에 내 그림자만이 홀로 서 있을 것이라 상상했다.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앉은 험산준령의 높은 산맥들과,

 
끝없이 펼쳐진 메마른 토양의 거친 고원.

 
그것이 내가 생각했던 파미르의 모습이었고 실제로 눈앞에 나타난 모습도 그대로였다.
 
그러나, 여정을 거듭할수록 그 거침과 메마름 속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천사들의 세상이 함께 있음을 알게 되었고 내가 가졌던 파미르의 절대 고독 대한 편견도 한 순간에 허물어져 내렸다.
 
우연히 들러 예고없이 찾아든 손님에게 가족처럼 정성스레 식사를 내어 주던 어느 마을 민가의 개구장이 꼬마들이 끝내 집앞 어귀까지 배웅을 나서며 건네 주었던 천진난만한 미소와

 
집에서 기른 토마토를 양동이에 담아 들고서, 익숙하지 않 흥정을 멋지게 하던 소년의 마음 씀씀이와 미소도 사랑스럽다.

호로그로 이동하던 길 위에서 만난 토마토를 파는 소년

 
척박한 고원이라지만 그래도 푸른 초원이 있어 소를 몰고 나와 풀을 먹이며 놀고 있는 꼬마 천사들도 너무나 깨끗하고 앙증스러워, 갖고 있던 초콜렛과 사탕을 한 주먹씩 안겨 주었다.

 

 
어린 동생을 데리고 소를 먹이던 작은 남자 아이는 낯선 이방인의 카메라에 아낌없이 손을 흔들어 주는 센스 만점의 멋진 모델이었고,

 
자전거를 몰며 놀고 있는 사내 아이들은 동네 형들과 어울려 놀던 어릴적 추억을 소환하기에 충분하였다.

 
이 곳의 아이들은 척박한 땅이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가시지 않는가 보다.
바람결에 날리는 머리카락이 신경 쓰이는듯 수줍어 하는 양치기 소녀의 함박 웃음을 보노라면 맑은 웃음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지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갓 태어난 새 생명을 작은 가슴에 품어 안고서 집으로 돌아가는 어린 소년의 얼굴.
아련하게 깃들어 있는 사랑의 미소는 의심할 여지 없는 천사의 얼굴이 아닌가...

 
이들이 돌아가는 집은 대개 황량한 초원 위에 자리 잡은 경우가 많다.
모래와 높은 산과 짧게 펼쳐진 초원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벌판 한가운데에도 작은 마을이 있다.

 
아침 잠을 깬 하얀 벽돌집 마을에는 물감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푸른 하늘 아래로 천사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아직은 찬 기운이 가시지 않은 아침 공기. 따가운 햇살에 눈을 찡그리면서도 어디서 왔는지 모를 낯선 이방인의 시선에 눈을 맞추며 연신 웃었다 찡그렸다를 반복하며 수정 구슬 같은 미소로 손 인사를 건넨다.
이제 막 하늘에서 내려온 꼬마 천사가 분명하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손인사를 건넨다. 너무 이쁘다.

 
난생 처음 보는 과자가 신기한듯 옆에 앉은 친구와 쉴 새 없이 얘기를 나누는데 그 모습을 보는 내내 행복감에 젖어 든다.

 
이 마을에는 부서진 자전거가 하나 있다. 얼마만에 보는 부서진 자전거인가.
저 부서지고 바람마저 빠져버린 자전거가 이 마을에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굳이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지만, 물질적인 풍용로움 속에서도 작은 행복 조차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 우리 주변의 모습이 떠올라 잠시 씁쓸해진다.
 
저 부서진 자전거를 굴리며 여기 아이들은 또 다른 행복을 찾을 것이겠지만, 행여 여리고 부드러운 고사리 같은 천사의 손과 발에 상처라도 생기면 어쩌나...하는 부질 없는 걱정도 해본다.

 
마을 아이들 중 나름 큰 언니들 그룹에 있어 보이는 소녀들이 모여 앉았다.
아직은 어린 아이임에 분명하지만 나이에 걸맞지 않게 성숙한 티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환경 탓일까?
어릴 적 내 손을 붙잡고 종일 돌봐주던 내 누이가 소녀들의 얼굴에 겹쳐진다. 아마도 저 소녀들도 그렇게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엄마처럼 손길을 내어주겠지..

 
거친 소원과 고원의 벌판에서 만난 철든 아이들과 어릴적 내 누이 같은 소녀들.
티없이 맑은 미소와 이방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하나 같다.
마치 오랜 세월을 살아온 나이 든 천사가 나이를 속이고 어린 소년 소녀의 모습으로 지내고 있는 것 같이 천진함 속에 어른 스러움이 느껴진다.
 
어린 천사들의 행복한 웃음 소리는 도심 마을에서도 끊이질 않는다.
고원 아래 호로그의 시내 광장에 서 있으니 지나가는 꼬마들이 신기한듯 쳐다보며 달려 와서 인사를 건넨다.
그 들 눈에는 색다른 외모의 동양인 아저씨가 적잖이 신기하게 보였을 법도 하다.

Hi~~ 하며 인사를 하는 손녀와 그를 바라 보는 친구의 표정이 재미있게 대비된다.
길 가던 여자 아이들이 카메라를 보더니 익숙한듯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한다.

동네를 주름잡을 것 같은 한 무리의 사내 아이들이 멀리서 보고 모여 든다.
몸집의 크기를 봐선 나이 차이가 제법 있어 보이지만 잘 어울려 논다.
그 분위기가 한껏 명랑하고 쾌활한 터라 여러 장 사진에 담아 본다. 기회만 된다면 이렇게 찍은 사진을 한 장씩 찾아서 나눠주고 평생의 추억거리로 삼을 수 있게 해주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아쉽다.

한 아이가 자신을 손흥민이라고 소개하며 다가와서 사진 촬영을 제안한다.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물건들이 골목의 아이들에겐 마냥 신기한 마술봉 처럼 느껴졌나 보다. 그 놀라고 재미있어 하는 얼굴 하나하나가 우리에겐 잊을 수 없는 보석같 모습으로 기억되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중에는 수줍고 부끄러운 나머지 차마 앞에 나오지 못하고 문 뒤에 서서 살포시 다가오는 작은 시선도 있었다.

일행이 묵었던 숙소의 귀염둥이 1.
일행이 묵었던 숙소의 귀염둥이 2.

 
초원, 고원, 골목길 가리지 않고 가는 곳 어디에서나 구슬 같은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고, 세상에 빛처럼 뿌려지는 곳.

 
자연과 함께 그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하면서 해맑은 미소로 살아가는 아이들.
쫓기듯 살아가는 우리 이웃의 아이들과는 너무 다른 모습에 안타까움 마저 들기도 했지만, 저 높은 곳에서 지금도 한껏 행복해 하며 양과 염소와 함께 고원을 거닐고 있을 고원의 천사들과 골목골목 보석같은 웃음을 나르며 행복의 꽃을 피워가는 골목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아직도 가끔 그 행복 속으로 빠져들곤 한다.
 
세계의 지붕 파미르, 그 높은 곳에서 내가 마주했던 것은 무엇일까?
 
파미르 퍼밋. 그것은 진정 나에게 천국행 열차표가 되어 주었다.
 
오늘도 그 작은 꼬마 천사들의 웃음 속에서 하루를 잠들며 인사를 건다.
안녕~ 작은 천사들, 늘 행복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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