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봄 마중을 가다-구례

나무 향기 2023. 3. 26.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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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돌아 오는 봄은, 긴 겨우내 지친 마음의 그 오랜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가장 짧게 스치듯 지나가는 아위운 계절이기도 하다.

그 짧은 계절을 행여 놓칠세라 봄 소식이 들려오는 곳이면, 많은 이들이 새벽길, 먼 길 마다 않고 전국의 어디라도 찾아가는 열정을 펼치기도 하는데 그 시작은 아마도 남녘의 매화가 아닐까.

구례 화엄사의 불당 앞 마당에 홀로 서있는 홍매화의 자태는 전국의 내로라하는 매화중에서도 으뜸이라 할 만큼 아름답고 수려하기에 매년 철마다 찾아오는 사람들도 적지않다.

그 유명세 덕에 가장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는 자리에서 사진 한 장 담기 위해서 새벽같이 찾아오는 극성 사진가들도 부지기수일 터인데, 올해는 나도 그 극성 속에 한 발 보태어 본다.

전날 밤 늦게 출발하여 3시간여를 차를 몰고 가니 새벽 3시경에 화엄사 주차장에 다다른다.

주차장에는 이미 앞서 도착한 차량들이 제법 보이고, 발걸음을 서둘러 경내로 들어가니 국민 포인트라고 알려진 곳에는 몇몇 사진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해가 뜨기를 기다리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그나마 홍매화를 담을 수 있는 자리가 조금 남아 있어서 산등성을 비집고 올라가 비탈에 삼각대를 펴고 자리를 잡았다.

아직은 차가운 지리산 자락의 새벽 공기를 몇시간 동안 견디려니 쉽지않다.

여명이 채 밝기도 전에 구도도 점검할겸 미리 몇 컷을 담아 보는데 역시 어둠 속의 매화는 제대로된 빛깔이 살아나지 않는다.

해가 뜨려면 아직도 2시간여를 기다려야 한다.

산사의 새벽 예불 소리가 공기를 타고 속세로 퍼져 나간다.

붉은 색이 화려한 홍매화이지만 오히려 흑백의 시선으로 보니 또다른 느낌이다.

 

이윽고, 여명이 트고 날이 밝아 오지만 유난히 구름이 짙은 하늘엔 아침 햇살은 모습조차 보이지 않고 희뿌연 아침만 다가올뿐이다.

차라리 새벽에 담은 모습이 더 나을 지경이다.

날씨의 조화야 어찌 맘대로 되겠냐마는, 그래도 잠까지 내팽겨치고 새벽을 달려온 노고를 생각하면 참으로 야속하고도 서글프다.

그래도 그냥 가기에는 아쉬워 여기저기 붉은 매화송이를 걸쳐가며 아쉬움을 달래어본다.

오늘 같은 날씨엔 어떤 꽃인들 제 색깔을 맘껏 뽐낼 수 있을까?

그래도 마음속 상상으로나마 화려하고 고고한 붉은 자태를 그리며 돌아 선다.

 

다음으로 만나볼 봄의 전령은, 서시천을 따라 노랗게 피어있을 산수유꽃.

구례 산수유 마을은 우리나라 산수유의 시배지로 알려져있으며 중국에서 건너 온 우리나라 최초의 산수유 나무로 알려진 오래된 나무가 보존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여 매년 이른 봄에 산수유 축제를 연다.

자동차 네비에는 산수유 문화관을 검색해서 찾아오면 어느 정도 규모의 주차장이 나오는데 거기에 차를 대고 산수유길을 걸으며 마음껏 노오란 봄 향기를 누릴 수 있다.

금요일, 평일이라 어느 정도 한적한 분위기를 예상하고 갔었지만, 의외로 북적이는 모습에 살짝 놀라기도 했지만 그 동안 코로나의 벽에 갇혀 지낸 시간들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주말이면 아마도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어 맘에 드는 사진 한 장 여유롭게 담을 수 있을지...

하늘은 뿌옇게 찌푸렸지만 노랗게 피어있는 작고 예쁜 산수유꽃을 보노라면 어느새 마음은 봄의 평화로움 속에 응어리가 풀어지고 마냥 즐겁기만 하다.

카메라에 담고 싶었던 화려한 봄의 전령은 담지 못했지만 마음 속에는 오랜만에 청량감 넘치는 풍성한 봄 소식을 하나 가득 담고 올 수 있었다.

봄은, 언제나 마음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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