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온 길

가고싶은 섬 굴업도-1

나무 향기 2023. 4. 15.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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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가고 싶다...
 
굴업도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백패킹 좀 한다는 사람들의 성지가 되어 있었다.

 
주말이면 들어가는 배 표 구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조용한 섬 마을에 모여드는데, 아직은 바다가 조용한 봄 날, 직장인으로서는 소중한 휴가를 주말 앞에다 두고 우여곡절 끝에 굴업도를 위한 배낭을 꾸렸다.
애초에 같이 가기로 한 일행들은 개인 사정으로 빠지고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나 홀로 길을 나선다.
 
3월의 마지막날, 덕적도 행 첫 배를 타기 위해 금요일 새벽 일찍 서둘러 인천 연안부두에 도착하니 부두의 아침은 벌써 분주하게 깨어 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가까운 식당에 들러 아침 해장국으로 배를 채운다.

개성없는 그저 그런 24시간 운영하는 해장국밥집.

 
굴업도로 들어가는 배는 직항편이 없기에 덕적도 진리항으로 가서 다시 굴업도행 배를 갈아 타야 한다.
왕복으로는 4번의 배를 타야 하는데, 가는 날짜가 홀수일이냐 짝수일이냐에 따라 배를 타는 시간이 차이가 난다.
짝수날 들어가면 배를 타는 시간이 1시간 이상 더 길어지므로 가급적 홀수날 들어가서 짝수날 나오는 스케줄을 준비하는 것이 수월하다.

아침 첫배를 기다리는 여객들로 연안부두 터미널은 벌써 붐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커피 한 잔으로 몸을 데우고 있자니 승선을 알리는 방송이다.

배를 타러 나가기 전 인증샷. 내가 타고 갈 코리아나.
평일인데도 좌석은 거의 빈 자리가 없고, 백팩도 제법 많이 보인다.

 
의외로 평일인데 객실은 가득 찬 모습이다. 배낭을 메고 온 사람들도 적잖이 눈에 보인다.
찌든 일상을 자연 속에서 털어내고픈 사람들의 간절함과 기대가 아니겠는가...나를 포함하여.
파도는 잔잔하여 한 시간이 지나니 덕적도다. 오랜만에 찾은 덕적도는 포근하고 정적인 평화로움이 한결같다.

 
굴업도행 배를 타려면 2시간의 여유가 있기에 진리항 바로 앞 하나로 마트에서 필요한 음식과 물품등을 여유롭게 장만하였다.

덕적도 진리항에서 배를 내려 좌측으로 바라보면 어렵지 않게 하나로 마트 간판을 찾을 수 있다.

 
11시 20분.
굴업도행 배에 몸을 싣는다.
처음에 대한 설레임.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기대와 동경...마치 어린 아이 처럼 들뜬 기분으로 배를 탄다.

 
굴업도까지는 다시 한 시간.
짝수날 배를 타게 되면 중간중간 들르는 섬들이 많아 2시간을 타야 한다. 홀수날 들어가야 하는 이유다.

개별 좌석이 아니라 좌석없이 그냥 바닥에 앉아서 간다. 역시나 사람들이 꽤나 많다.

 

객실 안에 설치된 각 이동 통신사의 중계기. 속도는 그닥 기대하면 안된다.

 
답답한 실내를 벗어나 바깥에서 하얀 물보라를 감상하고 있자니 어느새 굴업도에 도착했다는 안내 멘트.

 
서둘러 배낭을 챙기고 하선을 준비하는데, 많이들 왔다. 분위기가 마치 무슨 상륙작전을 방불케 하는 그런...ㅎㅎ
심지어는 주인따라 섬 나들이를 나온 멋드러진 하얀 반려견도 한몫 거든다.

 
선착장에는 단체로 온 방문객들과 예약된 민박/식당에서 마중 나온 차들로 분주하다.

 
아무런 예약도 없이 마냥 백팩 하나만 메고 들어 온 나는 우측으로 펼쳐진 굴업도의 고운 모래 해변을 벗삼아 호젓하게 선착장을 걸어 나간다.

지금은 고향에서도 볼 수 없는 어릴 적 기억 속의 모래톱을 굴업도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홀로 걷는 또 다른 백패커 옆을 마중나온 차를 타고 이동하는 여행객들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곱게 굽은 굴업도의 백사장을 감상하다 좌측 길로 돌아들면, 마을로 들어가는 거칠게 포장된 콘크리트 길이 제법 가파르게 나타나는데 10여분을 다리에 힘주어 걸어가야 한다.

 
앞서 가는 나 홀로 배낭족의 뒷모습이 허전해 보여 슬쩍...나랑 똑같이 걷고 있는 평생 친구를 돌아다 본다.

삶은 결코 혼자일 수도 없고 혼자도 아니다. 외로움은 그저 스스로가 만들어 낸 심리적 굴레일뿐이다.

 
거의 대부분의 여행길을 혼자 다니지만 항상 그렇듯이 혼자이기 때문에 외로웠던 적은 없다.
돌아다 보면 늘 묵묵히 소리없이 같이 걷고 있는 평생의 벗이 있기 때문이다.
사는 것도 그러하다.

콘크리트 길이 언덕을 이루는 정점에서 해변을 보니 혼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끈다.

 
혼사 서 있는 나무를 지나 언덕을 돌면 멀지 않게 마을이 보이고..

 
아기자기하게 벽화가 장식된 굴업도 마을을 지나면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 문명 세계의 마지막 화장실이 나온다.

한 낮의 굴업도 마을의 풍경. 한가롭게 누워있는 개가 슬쩍 고개 들어 지나가는 객을 올려다 본다. 
마을 끝 해변의 공중화장실. 여기서 가급적 속을 비우고 가는 것이 좋다.

 
마을을 지나 넓게 펼쳐진 또 하나의 해변이 나오는데, 고운 모래밭에 수많은 발자욱을 따라 지나면 저 멀리 내가 가고자 했던 그 곳으로 향한 길을 마주하게 된다.

티끌 한 점 없는 하늘과 바다 앞에 남겨진 수 많은 발자욱들...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발목이 빠지는 힘없는 모랫길을 나란히 걸어가는 두 젊은 어깨가 참 따뜻하게 느껴진다.

 
앞서 간 발자욱을 따라 아무런 표시도 없이 한 곳으로 향한 발자욱들의 행렬에 나도 한 점 보탠다.
내 뒤에 오는 누군가는 또 내 발자욱에 몸을 의지한 채 길을 걷겠지... 

한 곳으로 길게 줄지어 나 있는 많은 발자욱들 사이에 나의 그것도 한 점 흔적으로 남긴다.

 
해변을 지나 막다른 곳에 이르면 철책이 둘러져 있고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철문이 개방되어 있다.
이 곳은 몇년 전에 민간 리조트 개발 회사가 사들여 이미 사유지로 바뀐 상태. 언제 저 문이 닫힐 지는 아무도 모른다.
좀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한 개발과, 있는 그대로의 보존이라는 두 가지 가치 개념의 공존은 언제나 논란이 되지만 여기 굴업도는 어떻게 결론이 지어질지...

 
철문을 지나자 마자 만나게 되는 바윗길.
경사도 급하고 울퉁불퉁한 바윗길이라 26kg에 달하는 배낭을 메고 오르기가 쉽지는 않다.
몸의 균형을 잘 잡고 올라야 한다.

 
경사진 길을 오르고 짧은 숲을 통과하는 구간은 허벅지의 근육을 제대로 확인할 수 밖에 없는 구간이라, 이른 봄 날의 선선한 바람에도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힐 정도이지만 그 모든 거친 솜소리는 언덕을 올라 서서 뒤돌아 보는 순간 순식간에 사라지게 된다.

이것이 굴업도...!
굴업도 언덕 정상에서 보는 망망대해의 경계라는 것은 몇 줄 문장으로도, 몇 컷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진경 그 자체이기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찾고, 또 찾기를 열망하는 것이겠지.
잔잔히 펼쳐진 사방의 바다와 간간히 불어오는 사월의 해풍.
그 어느 여신의 손길이 이토록 감미롭고 부드러울까?

 
그 환각 같은 자연의 손길을 오롯이 느끼며 다시 최종 목적지를 향해 힘 내어 길을 간다.

 
또 하나의 숲길을 지나면 마침내 이 섬의 끝자락이며 수 많은 백패커들이 그토록 열망하는 백패킹의 성지인 개머리 언덕에 다다른다.

아래로 보이는 평평한 지점이 개머리 언덕의 끝지점.

 
주변을 돌러보며 마침내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끝자락에 하루를 지낼 작은 집을 지어 올렸다.

 
섬의 끝에서 보는 바다를 보고자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텐트 주위로 끊이지 않는다.

 
이 와중에 나는삼각대를 펼치고 셀카 놀이로 오후의 망중한을 즐긴다.

 
잠시 눈을 돌리니 아까 배에서 내릴 때 보았던 하얀 반려견 일행도 보인다.
자연과 어울려 오후 한 때를 보내는 모습이 살포시 미소를 부른다.  많이 힘들었을텐데...

영화가 아닌 영화같은 장면이다. 부럽기도 하고...

 
섬의 이 곳 저 곳을 렌즈에 담아 본다.

물안개가 짙어 흐린 시야지만 바다의 여유는 가릴 수 없다.
은빛 바다위에 부서지는 오후 햇살이 내가 좋아하는 만큼만 부서져 반짝여준다.
나 홀로 나무가 듬성듬성 섬의 고즈넉함을 더해준다.

 
편의점에서 장만해 온 편육으로 가벼운 점심을 하고 한참을 뒹굴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주변이 어둑해지고 급하게 카메라를 들고 홀로 나무를 향한다.

 
섬에서 바라보는 일몰을 어떤 모습일까?
굴업도에서 맞이하는 일몰. 섬에서 마주한 일몰이 처음은 아니지만, 뭔가 다른 모습니다.

 
드넓은 바닷가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황금빛 바다여서 그랬을까?

 
홀로 선 나무가 홀로 보내는 태양이기에 그랬을까?

 
흐린 수평선 너머로 발갛게 익은 하루 해가 넘어 가고, 그렇게 굴업도의 밤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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