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온 길

금오도 비렁길, 전설 속을 걷다(1~2코스)

나무 향기 2020. 5. 19.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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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던가, 금오도에 비렁길이라는 멋진 길이 있음을 이미 오래전에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냥 그렇게 흘려 보내다가 작년 가을 어느 시점에선가 금오도를 꼭 한 번 다녀오리라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 해 봄 청산도를 다녀온 영향이 컸으리라.

 

마침, 5월에 기회가 생겼다.

5개 코스 총 연장 18.5km의 비렁길 전 코스를 걸어볼 생각으로 2박3일의 여정을 준비한다.

 

비렁길은 걷는 길이기에 애초에 비박을 염두에 두고 계획했었으나, 금오도는 국립공원인

한려해상국립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어 공식적으로는 지정된 장소 외에는 비박, 야영이

금지된 곳이기에 부득이하게 민박과 캠핑을 병행하기로 한다.

 

금오도로 들어가는 배는 세군데를 통해서 탈 수 있는데, 여수터미널과 백야도, 그리고 신기항이다.

배 타는 시간은 신기항이 제일 짧지만 신기항까지 들어가는 시간이 길고, 비렁길의 시작점인 함구미까지

다시 버스나 택시를 타고 가야하는 불편함이 있기 때문에 함구미로 바로 들어가는 백야도항에서

배를 타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참고로, 여수터미널에서 타는 배는 함구미까지의 소요 시간이 1시간 40분에 육박하므로 왠만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권장할 바가 아니다.

 

어쨌든, 새벽 공기를 가르며 비 소식에 젖어 있는 고속도로를 달려 09시30분 경 백야도에 도착했다.

배 출발은 11시. 시간은 충분했다.

백야도 선착장 주차장. 주차장에 차량은 많았지만 주차료는 무료였다. 언제까지 무료일지는 모르나 여행객에게 무료란 좋은 것

일단 시간도 충분하기에 빈 속을 채우기로 하고 인근 식당으로 들어가 백반을 시킨다. 이른 아침이라 혹시나

싶었지만 다행히도 식사가 가능했다.

주차장 바로 앞에 위치해서 찾기도 어렵지 않고, 반찬도 깔끔하다. 남도 특유의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 간이 담백하다
여러 방송에서 이미 많이 다녀간 지역 대표 식당인듯, 캡쳐 화면이 많이 걸려 있고, 슈퍼도 겸하고 있어 간단한 물품 구입이 가능하다.
소화도 시킬겸 겸사겸사 식사 후 마을 구경을 다닌다. 경주 김씨 모자의 열녀, 효행 비가 세워져 있다.
시간 맞춰 승선권을 발급 받고 배를 기다린다.

들어오는 배가 함구미 행 배인지 확인하고 조심스레 배에 탄다, 주말이지만 승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코로나로 인한 영향 때문이겠지.

이 큰 배의 객실에 승객은 달랑 한 명. 덕분에 정말 편하게 갈 수 있었다.

백야도에 타는 배는 개도를 거쳐서 함구미로 가는데, 간혹 개도를 착각하여 내리는 경우가 있다.

금오도까지 시간은 대략 45분 정도 소요 되므로 항상 금오도 함구미인지 확인하고 내리는 주의가 필요하다.

기분좋은 5월의 물살을 가르며 가는 함구미행 페리. 넓은 자동차 적재 공간이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버렸다.
배가 함구미항으로 들어서고 있다. 마을의 인상이 아기자기하다.

배에서 내리면 바로 우측으로 비렁길의 시작을 알리는 푯말들이 안내도와 함께 서 있다.

우측끝으로 보이는 길머리가 비렁길 1구간의 시작점이다.
함구미 터미널 사무실 문에 붙은 택시 전화번호. 꼭 메모하면 후에 유용하게 쓰인다. 금오도엔 대중 교통이 매우 열악하다.

금오도는 섬 전체가 자라처럼 생긴 데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안내도의 섬 지형을 유심히 보면

자라의 형상이 보이는 듯 하기도 하다.

금오도는 15세기 조선시대 부터 왕실에서 쓸 나무를 관리하는 보존림으로 관리되어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되었고 고종 때에는 사슴을 방목해 키우기도 했던 귀한 섬이 아닌가.

그 숲으로 들어가기에 설레임과 기대감이 앞선다.

낮고 약한 경사길이 처음으로 맞이한다.

처음 시작된 넓은 오솔길은 어느새 시원한 숲 그늘로 이어지고....중간중간에 보이는 바다로 탁 트인 전망은

가는 이의 발걸음을 자꾸만 잡아 끈다.

 

동굴처럼 이어진 숲길을 지나노라면 우측으로 놀래키듯 바다가 나타나 감탄을 자아낸다.

숲 터널을 하나 지날 때 마다 만나게 되는 색다른 풍경에 지칠 틈도 없이 정신없이 걸음을 탐하게 되는데,

비렁길의 묘미가 이런 것이 아닐까.

맑은 하늘이 터널을 지나고 나니 어느 새 운무로 가득 덮여 신비로움 마저 감돌게 한다.

 

숲에 반해, 바다에 반해, 때로는 그 신비로움에 반하여 가야할 길도 잊은 채 한참을 멍하니 쳐다보고 서있기도

수차례. 어느새 첫번째 전망장소인 미역널방이다. 옛날 사람들이 여기서 미역을 널어 말렸다는 얘기가 전해지는데

사실 여부를 떠나 충분히 그럴만큼 넓다. 군데 군데 서 있는 기둥은 다도해의 아름다운 섬을 주제로 한 조형

예술 작품이니 한 번쯤 감상해보기 바란다.

 

미역널방에서 내려다 본 시원한 경계. 저 멀리 좌측으로 데크길이 보인다.

비렁길은 해안절벽가의 높은 곳이지만 안전하게 탐방할 수 있도록 여러 지점에서 세심한 배려를 엿볼 수 있다.

 

 

금오도 비렁길은 경치도 그만이지만 길가에 피어있는 작은 야생화와 꽃나무들도 여느 곳에서는 만나기 힘들

정도로 풍부한, 아름다운 꽃길이다.

큰 경치에 반하여 작은 아름다움을 놓치는 일은 없어야겠다.

무리지어 피어있는 찔레꽃과 눈괴불주머니
길은 앞으로 가지만 눈은 자꾸만 옆으로 돌아간다. 비렁길엔 마법이 숨겨져 있다.

꽃에 반해 경치에 취해 걷다 보니 두번째 전망대인 수달피 전망대이다.

세명의 탐방객들이 오붓하게 가벼운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가운데의 해송 한 그루가 눈길을 끌었지만

식사중인 탐방객들에 누가 될까 셔터를 누르지 못하고 다시 발길을 옮긴다.

수달피 전망대의 모습.
운무가 낀 바다는 하늘도 없고 바다도 없다. 보는 곳이 하늘이요 보는 곳이 바다다.

비렁길은 코스 중간에 쉼터나 매점이 거의 없어서 필요한 물품이나 음식은 출발 전에 대부분

준비를 해가야 하지만, 1코스에서는 중간에 저런 휴게소가 있어 길손들의 목을 축일 수 있다.

1코스 중간에 있는 휴게소. 시작점이나 끝점이 아닌 지역의 휴게소는 유일하다.
신선대를 지나 1코스 종점인 두포와 오늘의 종착점인 2코스의 종점 직포까지의 남은 거리

다시 숲길로 들어서면 만만찮은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다.

돌계단 마저 정감이 흐른다.
나라에서 관리하던 숲이라서 그런지 주변의 나무들이 시원스레 하늘로 뻗어있다. 그 아래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은 좋아진다.

얼마를 걸었을까? 오르막과 평지를 번갈아 걸으며 새들의 재잘거림에 흥이 돋아

걷던 중 다시 앞이 탁트인 정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신선대이다.

절벽 위에서 내려다 보는 바다와 시원한 바람으로 가빴던 숨을 고를 수 있었지만 짙은 운무로 넓은 시야는 보이지 않았다.

 

신선대를 뒤로하고 어제 내린 비로 흘러 내리는 계곡물의 장단 소리에 귀를 적시며

1코스의 마지막 지점인 두포 마을로 내려선다.

 

비렁길에는 곳곳에 대나무 숲이 펼쳐져 있다.

새소리와 파도소리를 함께 들으며 걷는 대나무숲길은 어디서도 만날 수 없으리라.

좌측 멀리 두포 마을이 보이고 바로 앞에는 사람의 흔적이 오래된 빈 집도 함께 보인다.
묵직한 배낭도 내려 놓고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가져온 견과류로 심심한 입도 달래고 목도 축인다.
2코스는 눈 앞의 산등성이를 돌아 넘어가는 길로 시작된다.

 

각 코스의 끝.시작 마을에는 항상 민박과 식당을 겸하는 집들이 있다. 매점이 따로 없기 때문에 저기서 요령껏 구매해야 한다.

2코스 길은 1코스와 큰 차이는 없다.

오히려 처음 1코스의 비렁길을 만나면서 놀라움과 신선함에 자극을 받은 터였는지 2코스는 상대적으로

그 감흥은 덜한듯...

안개에 싸인 1코스를 돌아보니 또다른 절경이다. 아스라히 안개속으로 가려진 모습이 점점 눈앞으로 올수록 선명해진다.
굴등 전망대 갈림길. 비렁길 구간은 좌측길로 이어지지만 굴등 전망대로 가려면 우측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한다
굴등 전망대. 가운데 식탁과 의자는 휴식의 용도 이외에 불법 비박을 방지하는 목적도 있다.
기암 절벽밑을 파고드는 파도는 언제나 힘차고 경쾌하다.

굴등 전망대를 지나 2코스의 끝점인 직포로 향한다.

굴등을 지나자 마자 펼쳐진 자주괭이밥(분홍색)과 바위채송화(노란색)

 

굴등을 지나 30분 정도 길을 가자면, 매우 기괴한 모양의 바위를 만나게 된다.

촛대바위 전망대. 아무리 보고 또 봐도 모습이 참 우스꽝 스럽기도 하고, 그 이름도 차마 어쩔 수 없이 촛대가

되었으리라는 생각이 절로 들어 웃지 않고서는 지나칠 수가 없다.

힘든 여정길에 청량음료 같은 곳이다.

촛대바위 전망대에서

 

직포에서는 함구미로 가는 배편이 있기 때문에 1박2일의 초 간단 여정으로 오는 사람들은

함구미에서 직포로 바로 들어와서 3코스만 돌고 다시 나가는 경우도 많다.

해서, 직포에는 나름 민박집과 식당이 여러 곳이어서 숙소를 구하기가 어렵지 않다.

촛대바위 전망대에서 본 직포마을 원경

새벽 5시부터 시작된 긴 시간 짧은 여정의 하루를 직포에서 마무리하고 숙소에다 짐을 푼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보대민박이라는 곳에서 묵어간다. 나름 섬 마을 숙소로는 깔끔하고 온수는 물론 정비가 잘 되어 있다.

민박집 바로 앞에는 민박집 사장님의 시동생이 운영하는 식당이 있다.

 

거리도 가깝고 딱히 다른 곳이라고 해봐야 아는 곳도 없어서 들어가서 저녁겸 반주 한 잔으로 목을 푼다.

인근 식당에서 한 상 잘 차려진 갑오징어 회와 금오도 생막걸리로 여독을 풀고, 넘어가는 석양에 하루를 감아 보낸다.

 

 

비렁길 1코스와 2코스를 걷는 내내 신비로움과 몽환적인 분위기에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어제 내린 비로 이해 안개가 미처 걷히지 않은 날씨의 영향이었을 수도 있으나, 그 보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에서 멀어져 자연 그대로, 그들만의 시간을 숨쉴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비렁길이 개척되고 10년을 접어든다. 그 신비로운 아름다움에 사람들도 찾아오는 사람들도

부쩍 늘고 있다.

행여 이런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이 오히여 이 깨끗하고 신비로운 전설같은 섬 금오도에 해가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비렁길과의 첫 하루를 이렇게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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