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온 길

곰배령, 천상의 화원에서

나무 향기 2022. 5. 29.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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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배령.

강원도 양양군에서 솟아오른 점봉산이 남으로 뻗쳐 작은 점봉산에 이르면

그 아래로 해발 1,100m 고지에 평평한 평원이 펼쳐지는데, 이 곳이 곰배령이다.

곰이 배를 내밀고 누워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곰배령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모양도 그렇고 이름의 유래가 동화스러워 귀엽고 이쁘기만 하다.

 

곰배령은 행정구역 상으로는 강원도 인제군에 속하고, 귀둔리와 진동리 두 곳의

들머리를 통하여 오를 수 있는데 자연 생태 환경 보존을 위해 매일 정해진 인원 수에

한해서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기에 두 군데 모두 사전 예약이 필수다.

예약제로 인한 세심한 관리 덕분인지 이 곳의 생태 환경은 원시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잘 보존된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그대로 느끼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다.

귀둔리 코스는 국립공원공단 예약시스템(https://reservation.knps.or.kr/main.action)을

통해 예약을 하고, 진둔리 코스는 점봉산 산림생태관리센터(https://www.foresttrip.go.kr/indvz/main.do?hmpgId=ID05030005)를 통하여 예약을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진둔리 코스가 더 길고 완만한 데에다, 다양한 야생화를 만나기에 상대적으로 더 적합하게

탐방로가 정비되어 있어 대부분 진둔리 코스를 통하여 오른다.

 

곰배령은 아름다운 원시 생태 환경과 지천으로 피어있는 들꽃, 야생화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기 때문에

예약이 만만치 않다. 특히 주말이면 더욱 예약하기가 어려우니 탐방 예정일을 미리 정하고 해당 일자에 대한

예약이 시작되는 날짜에 재빠르게 예약을 해야 한다.

 

운좋게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에 평일 기회가 생겨 두 말 않고 곰배령 탐방을 예약한다.

일찍 오를수록 더 오랜 시간을 곰배령에서 보낼 수 있기에 탐방 시각은 오전 9시.

아침 일찍 나선 평일의 고속도로엔 여유가 많다. 때마침 하늘에서 아름다운 그림이 펼쳐지고 있다.

평소에 원하던 곳을 찾아 떠나는 아침 여행길은 텅 빈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서서히 행복감으로 가득 채워져 간다.

 

오전 8시가 조금 넘은 시각.

진둔리 코스의 시작점인 점봉산 산림생태관리센터 앞 주차장에 도착.

네비에 점봉산 산림생태관리센터를 입력하게 되면 주차장 뒷쪽의 매우 좁은 오솔길을 통해 센터앞 막다른 곳으로

안내하는데 관리센터에서는 별도의 주차 시설을 운영하지 않으므로 네비에는 반드시 곰배령 주차장을 입력해야 한다.

주차장은 유료로 운영되는 사설 주차장이므로 1일 주차료를 선 지급해야 한다.

주차료 5천원을 현금으로 지급하고, 주차장 안내인의 안내를 받아 안쪽으로 차를 세운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주차장은 한산하다. 가끔 주차료 때문에 실랑이가 있는 것 같았다.

 

9시 타임을 예약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더니 이내 시간에 임박해서는 탐방로 입구로 모여들어 줄을 서기 시작한다.

센터 앞에서 줄을 서서 대기하며 이런저런 소식들을 찾아본다.

다행히 많은 인원을 대동한 단체 탐방객들이 없고 대부분 삼삼오오 혹은 커플들이다.

대기중 셀카.. 센터 앞 전광판에 평일인데도 678명 예약 인원 마감을 알리는 상황판이 걸려있다.

 

탐방로 입구에 걸려있는 코스 안내도와 탐방시 주의 사항. 아무리 쉬운 산이라도 위험하지 않은 산은 없다.

어느 산을 가더라도 그 산에 맞춰서 공지해 놓은 입/하산 시 유의 사항에 대해서는 눈으로라도 반드시 한 번을 보고 가는

것이 좋다.

우측 탐방로 안내도에서 파란색 코스는 입/하산 양방향 산행이 가능하나, 빨간색 코스는 하산 전용 코스이다.

탐방로 입구 창구에서 신분증을 건네주면 본인 확인 및 예약 확인을 거쳐 입산 허가증을 교부해주는데 이것은 나중에

하산시 다시 반납해야 하므로 잘 지니고 있어야 한다.

아울러, 힘들게 예약을 하고도 본인 여부가 확인이 안되면 입산이 허용되지 않으므로 신분증은 반드시 챙겨가야 한다.

탐방로 입구에서 교부해주는 입산 허가증

 

입산 허가증을 교부 받고 신원 확인이 되면 바로 입산이다.

초입은 데크로 정비된 기분 좋은 산책로 분위기.

 

데크길이 끝나면 바로 작은 오솔길이 하얀색 로프를 양옆으로 놓고 정겹게 뻗어있다.

길은 평탄하고, 살랑이는 봄바람의 감촉이 숲속 치유의 제대로된 경험을 한아름 내어준다.

붐비는 사람들 없이 요란한 소음도 전혀 없는 이런 길이야말로 산삼 보약보다 훨씬 나은 진정한 현대인의 치료제가

아닐까..^^

오솔길을 따라 심신을 자연에 맡기고 걸어가다보면 녹음의 향연이다.

 

길 왼쪽에는 거울같은 물이 계곡을 이루는데, 그 물소리가 작은 야외 합주단의 연주 처럼 몸과 마음을 유리알처럼

훑고 지나간다.

 

곰배령 계곡

 

곰배령으로 오르는 길은 바쁜 걸음으로 내기하듯 걸어서는 안된다.

느릿느릿 거북이 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발밑의 감촉을 느끼면서 눈은 길 옆과 아래 위를 두루 살피면서 걸어야하는 길이다.

곰배령 길을 수놓는 대부분의 들꽃들이 키작은 야생화인 데다가 빼곡히 늘어선 나무들과 길 옆 계곡의 물소리 어느 하나 놓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호젓한 봄날 숲길에 취해 걷다 처음으로 눈을 마주친 괴불주머니. 유난히 노란색이 맑고 투명하다.

 

미나리냉이꽃

 

관리센터 입구에서 2km 정도를 걸어가면 강선마을이라는 토착 마을이 나오는데 오래전부터 주민들이 살고있는 마을이라

여기서 주민들이 민박도 하고 식당도 운영하면서 거주하고 있다.

 

허영만 화백도 예전에 본인이 진행하는 어느 방송사의 프로그램을 당시 이영표 강원 FC단장과 함께 이곳에서 녹화했던

적이 있는데 그 식당이 강선마을 끝집이라 탐방객들이 오르내리며 여기서 목도 축이고 출출한 속도 달래는 모습이다.

참으로 평화스럽고 여유로운 모습이다. 5월의 숲이기에 더욱 그럴것이다.

화장실이 Open 화장실이므로 마지막으로 들렀다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곰배령 끝집을 지나치면 약간의 오르막과 함께 이제부터 본격적인 숲 산행이 시작된다.

다리를 건너게 되면 또 하나의 초소가 나오는데 여기서 다시 한번 입산 허가증을 검사한다.

아마도 강선마을에서 민박 후에 허가증 없이 올라오는 사람들이 종종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몰양심적인 행위는 자연속에서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특히 강원도의 산은 깊고 높기 때문에 야생동물의 위험에는 항상 조심해야한다.

보통의 산은 정상을 향해 위로 올려다 보면서 걷는 길이라지만, 곰배령 길은 아래를 보면서 걸어야 제맛인 길이다.

작고 예쁜 꽃들이 길 양옆에서 도열을 하듯 살랑 부는 봄바람에 춤을 춘다. 앞만 보며 걷는 바쁜 걸음으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강선마을을 지나 다리를 건너서 얼마되지 않은 곳에서 휴대폰 신호 미약 지점이라는 푯말이 눈에 띈다.

여기서부터는 휴대폰 인터넷 연결은 거의 없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보통의 경우라면 휴대폰 어플을 통해 꽃 이름을 검색하면서 갈 수 있겠으나 그 훌륭한 문명의 도구도 신호조차 안잡히는

이런 산골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길에서 만난 처음보는 작은 꽃들의 이름도 모른 채 그냥 감상만 할뿐이다.ㅠㅠ

문명의 흔적이 깔끔하게 사라지는 공간. 오로지 새소리와 물소리 그리고 걷고있는 내 발소리만 들릴뿐 다른 건 없는 길.

 

곰배령길을 걷는 중 그 시원한 바람의 느낌은 옮겨올 수 없음이 아쉬울뿐이다.

높고 깊은 숲에선 큰 나무도 가로누워 다리와 함께 길을 안내한다.
신록. 하늘의 푸른 빛도 스며들지 못할 정도의 빼곡히 들어선 신록이다.

센터에서 출발한지 대량 1시간 남짓.

가파른 계단길이 눈앞에 나타난다. 10시 18분. 저 계단만 오르면 곰배령 정상이 나타날 것이다.

곰배령 정상 앞 계단. 제법 가팔라서 시원한 그늘임에도 불구하고 가느다란 땀방울이 흐르기 시작한다.

 

드디어 정상부가 눈에 들어오는데 역시 익숙한 장면 하나. 인증샷에 목마른 대기줄. ㅎㅎ

그나마 이른 아침 9시 탐방 예약이었기에 대기줄이 그리 길진 않았다.

 

평소 산행시에는 단독 인증샷에 대해서 그리 집착하는 편이 아니기에 왠만해서는 사진 한 장 찍겠노라고 길게 줄서서

기다리지는 않는데 여기서는 고민없이 바로 줄을 서서 단독 인증샷 하나를 남긴다.

왜?  여긴 곰배령이니까.

등에 흐른 땀을 식혀주는 고마운 뒷바람 덕에 배가 많이 부른 사진이 되었다. 곰배령에서는 곰배가 되어야한다. ㅎ

 

인증샷 이후 한참을 서성이며 곰배령 정상의 운치를 즐기다가 이제 하산길로 방향을 잡는다.

하산길은 곰배령 정상석과는 반대 방향.  올라오는 길 기준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올라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 내려가는 경우가 많다. 그 만큼 하산길은 여러번 반복되는 오르내림으로 인하여 체력이 약한 사람이나, 산행에 익숙치 못한 사람들에게는 적잖이 힘들다는 얘기이다.

그래도 곰배령의 다양한 매력을 느끼려면 하산은 다른 코스로 하는 것을 권한다.

 

하산길로 오르는 탐방객들

 

하지만 하산길 초입부분에 전망대가 넓게 설치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가져온 음식과 도시락등을 먹으면서 휴식과

여유를 즐기며 쉬었다가 다시 내려갈 수도 있으므로 하산코스는 따로 잡지 않더라도 곰배령에서 인증샷 후에 전망대까지 올라가서 더 높은 곳에서 시원한 조망을 경험하고 가보는 것이 좋겠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전경 1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전경 2

 

해발 고도가 높은 곰배령에선 선선한 기후 덕에 5월 중순인 지금에야 철쭉이 꽃망울을 틔운다.

 

하산 코스는 등산 코스에 비해 야생화는 그리 많지 않고 아기자기한 매력은 없지만, 그 깊은 원시림을 홀로 걷는 호젓함은

인적이 드문 만큼 더 깊은 것도 사실이다.

 

올라올 땐 보지 못했던 서어나무 군락에 새로 돋아나는 새잎과 함께 매우 신비스럽다

 

여러번의 오르내림 속에 서서히 하체의 근육에 압박이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곰배령길은 딱 그렇게 필요한 곳에

신기하게도 나무 벤치 등 쉼터 공간이 준비되어 있어 쉬엄쉬엄 유람삼아 걸을 수 있는 너무 좋은 길인 것 같다.

하산길은 철쭉도 그렇지만 대부분 키작은 산죽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문득 눈에 띄었던 작은 분홍 꽃송이.

얼레지.

보통 이른 봄에 잠시 왔다가 가는 꽃인데 여기에선 이제 한참 예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얼레지는 유독 내가 좋아하고 이뻐하는 야생화인데 이렇게 예기치 못하게 만나게 되니 더 반가울뿐이다.

어쩌면 이번 곰배령 탐방길에서 얻은 가장 반가운 경험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행복감에 젖은 하산길은 가파르고 힘든 길이었지만 기분만은 마냥 가볍고 행복하기 그지 없다.

어느새 센터 앞이다.

경사가 가파르고 주변의 풍광이 상대적으로 덜하기 때문에 하산 코스는 찾는 사람이 드물고, 그렇기 때문에 행여

사고라도 나는 경우엔 휴대폰 신호도 신통치 않아 낭패를 당하기 쉬우므로 매우 조심히 내려와야한다.

하산길은 경사가 가파르고 낙엽이 많으므로 특히 조심해서 내려와야 한다.

 

센터로 나가기 전 만나는 마지막 계곡.

아쉬움이 남아 한참을 다리 위에서 계곡의 물소리에 심신을 맡긴다.

 

텅 비어있던 주차장은 어느새 가득 들어차 있고, 대절해 온 관광버스도 벌써 여러 대...

평일인데도 저 정도라면 주말이면 어떨지..? 예약제가 아니었다면 몰려드는 인파들로 인해 오늘 내가 보았던

그 아기자기하고 정갈한 곰배령의 모습은 벌써 다른 세상 얘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점심 때가 조금 지난 시각에 하산을 완료한다.

높은 산이지만 위보다는 아래를 보며 걷는 길, 새소리 물소리를 방해받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들으면서 걸을 수 있는 길,

길고 복잡한 이름의 크고 화려한 꽃송이 대신 이쁜 우리 이름을 가진 작고 수수한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있는 길.

곰배령. 천상의 화원으로 가는 길이다.

오래도록 상처받지 않고 이 곳에 남아있길 간절히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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